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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 소니의 몰락
소니의 역사는 1946년 `이부카 마사루`와 해군 장교 출신의 `모리타 아키오`에 의해 설립된 동경통신공업주식회사(Tokyo Telecommunications Engineering Conpany 이하 `동통공`)가 바로 소니의 모체이다. 1955년 동통공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 이미 일본에서는 테이프레코드의 생산액에 있어서는 일본 총샌산액의 91%를 자랑하고 있는 회사로써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동통공은 1957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머니에 쏙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초소형 라디오를 개발, 시판하는데 이때 제품 브랜드로 채택한 것이 `소니(Sony)`였고, 이후 상품명을 회사명과 일치시키기로 결정한다. 미래를 위해 10년간 알려온 `동통공`이라는 이름대신 `소니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바꾼 것이다.
소니는 `사운드(sound)`와 `소닉(sonic)`의 어원인 라틴어의 `소누스(sonus)`에 `작은 아기`라는 의미의 `sonny`가 합해져서 지어진 이름이다. 여기에 `회사는 작지만 그보다 발랄하고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 담겨있는 Sony. 어떤 나라에서도 보통으로 발음할 수 있고 어디에 가도 읽는 법이 변합없는, Sony라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 http://www.stylezineblog.com ‘소니, 스타일을 말하다‘
소니는 ‘자유 활달’이라고 창업 이념을 정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기업문화를 토대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봉사하자는 기업이념을 표방해 왔다. 일본의 한 저명한 평론가가 ‘소니는 모르모트(실험용 동물)다’라고 언급했다. 이 기사는 소니가 만든 제품을 보고 좋다고 생각되면 큰 기업체가 가…
-소니는 지난 10년간 별다른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09년에는 더 악화되었다. 출처: www.sony.net
쟁을 유발하며 함께 윈-윈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니는 과거 사업본부제를 운영할 때부터 각 사업단위의 업적평가와 더불어 높은 업적에 대한 표창제도를 시행해왔다. 그 당시에는 현금 흐름이나 활동성과 같은 대차대조표상의 평가지표는 20퍼센트정도의 낮은 가중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컴퍼니 제도 실행 후 각각의 컴퍼니들은 마치 상장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당해 연도의 업적에 책임을 지듯이 본사에 평가받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차대조표에 대한 책임도 져야 했다. 그리고 신규 투자의 경우에는 투자수익률을 계산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해당 투자의 회수 기간에 민감했다. 이는 본래의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해내던 소니의 방침을 바꾸게 되었다. 그 예로 소니의 컴퓨터 브랜드인 VAIO(바이오)를 보면 알 수 있다. PC사업분야에서 여러 회사가 엎치락뒤치락 하고있는 시장에 후발 주자로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용법이나 컨셉을 추구하는 것이 바이오의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초기의 바이오는 새로운 기능들로 호평을 받았다. 많은 기능이 있지만 몇 개 소개하자면 자동접속인지기능이 있는데 이는 현재의 PC에서는 당연한 기능이지만 당시 바이오에서 처음 실현한 것인데 바로 PC포트에 외부장치가 접속되면 이를 인지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기능이다. 또 최신 키보드에는 버튼이 많아 이를 누르면 카메라가 시동하거나 브라우저가 시동되는데, 이를 고안해낸 것도 바이오다. 당시의 바이오 엔지니어들은 ‘기술에 대한 타협은 고객에 대한 모욕이다.’라는 철학으로 제품개발에 임했다. 프로수준의 최고품질 제품을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고객이 최고의 기술을 체험하고 활용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만드는 측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당시 하드디스크가 20GB밖에 되지 않아 최고화질로 녹화하면 5시간이면 가득 차 버렸다. 더구나 OS나 다른 소프트웨어도 들어 있으므로 실제 녹화시간은 그보다 더 짧았다. 그렇다고 해서 최고화질 모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트 레이트에는 1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