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의 구조와 그 중층적 의미
1. 머리말
17세기 후반 김만중(1637-1692)에 의해 지어진 <구운몽>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삶의 핵심적 문제를 꿈이라는 낭만적 형식을 빌어 다층적으로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운몽>은 소설에 비판적이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서도 폭 넓은 공감을 얻었으며,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이본 및 사상 연구에 집중되었던 70년대까지의 논의는 정규복에 의해 주도되었는데,1) 특히 그의 <금강경> 공사상설은 작품 이해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는 중요한 성과였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김일렬과 조동일에 의해 <금강경> 사상설에 대한 체계적 반론이 제기되고,2) <금강경> 사상설을 거듭 확인하는 재반론이 나오면서,3) 사상 문제는 <구운몽> 연구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금강경> 사상설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사실 ‘사상’ 그 자체보다도 작품 해석의 시각차에서 근본적으로 기인된 것이었기에, 이는 보다 정밀한 작품 분석과 접근 방법의 다양화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리하여 <구운몽> 연구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고, 특히 최근 젊은 연구자들의 다각적인 논의4)는 작품 이해의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하지만 논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의미 해석을 둘러싼 견해차는 별로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더욱 첨예화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과 꿈을 교직시켜 다양한 층위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독특한 작품구조에서 근원적으로 비롯된 것이지만, 개별적 의미보다 사적(史的) 흐름의 파악에 더 관심을 두는 최근의 연구 경향과도 일정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민족사 혹은 소설사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함께, 사적으로 의미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됨으로써,5) 작품을 총체적으로 문제삼는 논의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6)
이 글은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구운몽>에 있어 현실과 꿈의 관계 양상 및 그를 통해 드러나는 중층…(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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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가 높고 빼어나 다섯 봉이 구름 속에 들었거늘 왕더러 묻되, “이 뫼 이름을 무엇이라 하나니이꼬. 소유 천하에 두루 다녔으되〔오직 화산과 이 뫼를 못 보았나이다.〕9)” 용왕이 대왈, “원수 이 뫼를 모르시도소이다. 이 곧 남악 형산니이다.” 상서 왈, “어이면 저 뫼를 보리이꼬.” 왕왈, “일세 오히려 늦지 아녔으니 잠간 구경하셔도 영에 돌아가리이다.” 상서 수레에 오르니 이미 산하에 이르렀더라.
상서 막대를 끌고 석경을 찾아 가니 일천 바위 다투어 빼어나고 일만 물이 겨뤄 흐르니 겨를하여 이루 응접치 못할러라. 탄하여 가로되, “어느 날 공을 이루고 물러나 물외에 한가한 사람이 될꼬.” 문득 바람결에 경자 소리 들리거늘 사문이 멀지 아닌 줄 알고 좇아 올라가니 한 절이 있으되 제작이 극히 장려하고 노승이 당상에 앉아 바야흐로 설법하니 눈썹이 길고 눈이 푸르고 골격이 청수하여 세상 사람이 아니러라. 모든 중을 거느리고 당에 내려 상서를 맞으며 왈, “산야 사람이 눈이 없어 대원수 오시는 줄 알지 못하여 멀리 맞지 못하니 죄를 사하소서. 원수 이번은 돌아올 때 아니어니와 이미 왔으니 전상에 올라 예하소서.” 상서 분향 예배하고 전에 내리더니 문득 실족하여 엎더져 놀라 깨달으니 몸이 영중에서 교의에 의지하였고 날이 이미 밝았더라.(233-235)10)
토번 정벌에 나섰던 양소유는 반사곡 영중(營中)에서 한 꿈을 꾼다. 이 꿈 속에서 그는 백릉파를 만나 가연을 맺고, 남해 용자(龍子)를 퇴치한 뒤 용궁에 초대되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형산을 유람하게 된다. 이러한 양소유의 꿈은 제8장과 제9장에 걸쳐 15쪽 정도의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인용 대목은 이 꿈의 끝부분으로서 1쪽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서술 분량만으로 본다면 이 대목은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며, 지금까지 이 대목이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꿈은 <구운몽>에서 현실과 꿈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 단순히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