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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질의 세계화`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
‘세계화`라는 말은 이제 `정보화`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일상 용어가 되었다. <세계무역기구 WTO>가 정식 출범한 1995년은 ‘세계화의 원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신경제니, 국제화니, 국가경쟁력 강화니 하는 구호들이 사회를 주도적으로 통합해 나가기 위한 주요 ‘화두’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우선, 국제화나 세계화라는 말의 사전상의 의미보다는 이 말이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제화’란 기업경영에 있어 나라간 국경의 개념을 인정하며, 자기 국가를 기호로 다른 나라와의 일정한 관계 하에 경영활동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세계화’란 나라간 국경 자체의 한계나 차이를 뛰어넘어, 처음부터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경영 단위로 삼는, 보다 공세적이고 전략적인 기업활동을 일컫는다.
즉 국제화가 되든 세계화가 되든, 남 밑에서 땀흘리며 일하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보통사람들한테는 국경과 민족의 개념이 냉혹한 현실로 다가와, 나라간에나 민족 간에 서로 ‘다름’을 확인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계화는 기업가들이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다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 모든 장벽들을 시원하게 열어젖히자는 의미에서만 진보적인 것이지,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이 세계화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한테는 세계적인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높은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세계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 세계화에 대비하는 과제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노동력의 자질과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이 논의되고, 노동력의 왕성한 근로의욕을 창출하며 경영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개…
마다 열심히 일하러 가는 이유는 쉽게 말해서 ‘좀 잘 먹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위와 같은 무한 경쟁의 논리에 휘말릴 때 과연 이러한 인간다운 생활을 언제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학대해야 하고, 인간적 욕구를 억압해야 한다. 그래서 원래는 우리 모두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일하러 가는 것인데, 이제는 경쟁력 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 ‘삶의 질’을 희생시키고 잇는 것이다.
둘째, ‘상품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은 경제 주체인 우리 모두에게 경제와 경영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를 강제하고 있다. 경쟁력 강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창조와 진보의 주체가 아니라, 경영혁신과 생산합리화의 ‘객체’로 뒤바뀐다. 바로 이것이 ‘주체와 객체의 전도’ 현상이다. 외적으로 강요된, 그리하여 일개의 ‘생산요소화’되고 ‘객체화’되고 ‘대상화’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 무한정의 범지구적 경쟁은 우리를 ‘생산적 경쟁’이 아닌, ‘파괴적 경쟁’으로 몰아세운다. 즉 자연과 인간이 동시에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전도’ 현상이다. 기업의 경쟁력과 이윤증대를 위해 자연을 포함한 온 사회, 온 생태계가 그 고유의 건강성을 잃어버리고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병든 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철저히 분리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인과 시회의 관계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자연은 원료나 기계 등 생산수단으로서의 의미만 갖고, 인간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능력과 노동의욕을 가진 노동력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적 논리는 시장경쟁을 매개로 한 ‘일류주의’와 ‘이윤추구’이다. 모든 것이 상품가치로서만 평가되고 그것도 가격경쟁과 품질경쟁이 있는 것만, 따라서 많은 이윤을 갖다주는 것만 훌륭하고 가치로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이러한 ‘병든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되바꾸지 못하는 논리와 실천은 ‘전도된 현실’의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