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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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1
(1) 로시니의 일생? 2
(2) 간단하게 정리한 로씨니 일대기? 3
(3) 로시니와 관련된 일화들?4
2. 세빌리아의 이발사(barbiere di Siviglia)?6
(1) 세빌리아의 이발사 줄거리?7
3. 참고문헌?10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년 2월 29일~1868년 11월 13일)
이탈리아의 작곡가.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이탈리아 페자로
주요작품 : 《세빌리아의 이발사》《오셀로》《도둑까치》
조악키노 로시니는 19세기 전반기의 가장 중요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이다. 그당시
람들로 부터 최대의 작곡가로 불리워진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척도로 다른 작곡가들의 업적
마저 측량하게 되었다. 주젭페 베르디가 나타나 처음으로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중심적 지위를
잃게 되지만 그 베르디 조차도 성숙기에 도달할 때까지 로시니는 능가하는 명성을 얻지 못
다. 그러나 그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로시니의 인간상, 예술가상은 지금도 알수 없는 점이
고 여러 곡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로시니는 대게 게으름뱅이고 식도락가로서, 유명한 스테이크 요리`투르네도
시니 (쇠등심살 고기를 다른 고기사이에 넣어 구운것)`는 그에게서 이름 붙여졌을 정도이다.
그리고 떠벌이 인간으로서 프랑스의 `제 2제정 시대`의 거들먹 거리는 인간으로 흔히 묘사되
한다. 이것은 1823년 로시니가 오페라계에서 물러난 뒤에 쓰여진 믿어지지 않는 전기적 자
에서 나온 …
한 《결혼 어음》으로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1813년에 상연한
《탕크레디》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자》가 모두 호평을 받고, 1816년 로마에서 공연한 《
비야의 이발사》가 절찬을 받아 이때부터 그는 일류의 작곡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어 《
셀로》(1816, 나폴리) 《도둑까치》(1817, 밀라노) 등도 절찬을 받았다. 그리고 1822년에는
빈을 방문하여 로시니선풍을 일으켰으며, 1823년에는 런던을 방문, 영국왕실로부터 따뜻한
영을 받았다. 1824년 파리로 건너가서는 이탈리아 오페라극장의 감독을 맡아 프랑스 정부로
터 연금과 보수를 받고 작곡에 종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이 밖에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815, 나폴리) 《신데렐라》(1817, 나폴리) 《이집트의 모세》(1818, 나폴리) 등과 파리에
의 작품 《오리백작》(1828) 《기욤 텔 Guillaume Tell》(1829) 등이 있는데 대작 《빌헬름
텔》을 최후로 사실상 오페라에서 손을 떼었다.
1836년 볼로냐로 돌아와 음악학교 교장으로 여생을 보내다가 1848년 피렌체로 옮겨 잠시
낸 후 1855년 다시 파리로 건너가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한편 만년에는 요리연구에 몰두
여 많은 저서를 내기도 하였다. 38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칸타타 ?피아노곡 ?관현악곡 ?가곡
?실내악곡(현악4중주곡 등) ?성악곡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작곡탈리아오페라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이탈리아 고전오페라의 최후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졌다.
-간단하게 정리한 로씨니 일대기-
1792년 - 이탈리아의 가이드리아 해 작은 마을 페드로에서 , 직업 호른주자인 아버지와 ,
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1802년 - 아카데미아 필하모니에 입회하는 파격적인 영예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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