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룰라와 차베스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과 평가
서론
라틴아메리카는 과거부터 먼로 독트린, 루즈벨트 추론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거인,’ 즉 미국이라는 지역 헤게모니와 식민지시기를 탈피한 이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럽의 힘에 종속되어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하여 바르가스나 페론, 카르데나스와 같이 대표적인 민중주의적 지도자들은 강력한 민족주의와 CEPAL이 제공하는 독립적 담론에 힘입어 수입대체산업화와 석유와 같은 주요 자원의 국유화를 통하여 라틴 아메리카에 드리운 미국과 유럽의 헤게모니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 자체는 수입대체 산업화의 실패와 중산층의 반발과 같은 국내적인 불안과 더불어 국제 냉전 질서에 따른 외부적인 압력으로 손쉽게 분쇄되었다. 이러한 냉전 구도 속에서 미국의 뒷마당으로 전락한 라틴 아메리카는 로스토우가 제안한 군부 주도의 근대화론과 내부적인 국가 안보 독트린에 따라 관료주의적 권위주의를 경험하고, 이는 반공의 기치 아래 대미 외교에 있어 의존도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냉전과 더불어 민주화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과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결합되어 일어난 국가 부도 사태는 미국이 IMF를 필두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내세워 시장 개방과 민영화를 강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냉전기에 존재한 소련이라는 대안적 지원 세력조차 사라진 탈냉전 시대에는 미국의 압력에 대하여 자율성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미국에 대하여 자율성을 보여준 쿠바나 니카라과와 같은 국가들은 경제 봉쇄나 내전과도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자율성이 크게 신장되고 있고, 특히 브라질과 베네수엘라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두 나라는 부시의 대-테러 전쟁 …
휴고 차베스Hugo Chavez의 리더십
1. 차베스의 정치인으로서의 성장1)
2. 차베스의 리더십 특성
1) 수평적 소통
이었다. 이러한 그의 출신과 성장 과정은 후에 대통령이 된 후 연설에서 민중과 자신이 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임을 강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배경으로써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차베스는 스스로 그의 유년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영향을 받거나 특정 정치 성향을 띠지 않았었다고 말한다. 그의 정치적 신념은 그의 육군 사관학교 시절에서 기인한다. 이 시절 사회주의를 접하고 민중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부조리를 느낀다. 청년의 차베스는 육사에 진학하여 성공과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편이었으나 특수부대 중령 차베스는 시민들과 연계하여 92년 군사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내부의 배신으로 이 첫 시도는 실패한다. 이에 대해 언론에 등장하여 투쟁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며 스스로 감옥을 향한다. 이때에 ‘지금으로써는 실패한 것일 뿐’이라는 말을 집어넣어 미래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다. 일찍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실천한 정치인이 부재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군사혁명 실패는 그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와 신뢰를 구축한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워 감옥행을 택함으로써, 1) 그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볼리바르 장군의 자주정신에 입각해 있음 3) 비록 당장을 실패했지만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느낌을 국민들이 각인하게 되었다.
투옥 동안 그는 많은 책을 읽으며 학문을 닦고, 출옥 후에는 전국을 여행하며 사람들과 대화 토론을 통해 베네수엘라 및 새로운 남미 건설을 위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간다. 그는 양극의 빈-부가 공존하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으며 국가와 제도의 부패, 부조리를 개혁하고자 한다. 총을 버리고 민주주의를 힘입어 제5공화국 운동에 이어 대선에 출마하여 대통령 당선되었다.
2. 차베스의 리더십 특성
1) 수평적 소통
그의 볼리바리안 정신은 외부로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 포퓰리즘 등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민중들의 정치적 참여와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