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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코의 역사철학
1. 비코의 생애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ista Vico)는 1668년 나폴리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그곳 나폴리에서 1744년에 죽었다. 클리엔토의 바톨라 근교에서 바톨라의 후작 로카의 두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정교사로 지낸 몇 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그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평생토록 나폴리 대학의 법학 교수직을 원했지만, 수사학 관련분야에서 여러 지위를 맴돈 것이 고작이었다. 그는 법학 교수직보다 열등한 수사학 교수직에 1699년부터 1741년까지 봉직했다. 수사학 교수직이 그에게 제공한 것은 변변치 않은 봉급과 10여 차례의 학기개시 강의들이 전부였지만 이 강의들 중에는 독창적인 관념이 번득이는 것들도 있다. 그는 주요 인사들의 라틴어 비문이나 송덕문이나 전기를 작성해 달라는 부자들과 고관들의 청탁을 받아들여 적은 수입을 늘리곤 했다. 이 같은 작품들 가운데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봉사한 나폴리 출신 용병대장 카라파의 전기가 유명하다. 비코는 카라파의 각종 전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국제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로티우스를 비롯한 여러 법철학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법철학 연구는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코의 유명한 저서로는 『새로운 과학(Scineza Nuova)』,『자서전』이 있다. 비코는 특별하게 전문적으로 역사서를 서술하지는 않았으며, 우리가 그의 역사철학을 알 수 있는 것은 위의 두 저서와 그가 강의한 강의록들로부터이다. 비코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교량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 비코의 인식론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의 순환사관이 역사진행의 단순한 반복과 순환으로 인식되었다면, 비코는 좀 더 나아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순환하면서 직선적인 발전, 내지는 확대되는 과…
3. 역사발전의 3단계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인간이 유용성과 필요에 의해 정신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표상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식된 진리라는 것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진리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 인간이 처해있는 공간과 시간, 능력에 따라 그 본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 시대마다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각기 다르게 표출 될 수밖에 없다.
3. 역사발전의 3단계
자연법 사상가들은 이성적 기준에 의해서 원시사회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이에 비코는 원시인들이 야만상태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시민사회의 기원을 조잡하고 미미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믿지 않았던 신화나 역사의 허구성은 잘못된 명제(혹은 가설)로 생겨난 오류라고 비판한 것을 의미한다. 즉, 원시사회는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가 아니라 상상과 공포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원시인들은 상상에 의하여 공동체를 형성하였기에 상상의 산물인 신화는 과거를 복원하게 하는 사료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코는 과거 가설에 의존한 역사학은 비판되어야 하고 신화를 인간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비코의 역사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며 방법론적인 그의 생각을 잘 나타내어 준다.
비코의 역사발전 이론은 인간정신의 자기규정화라고 설명될 수 있다. 즉, Ideal Eternal History(理想을 향한 永久的 發展의 歷史)라고 하는 본체로서의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정신의 자기표상과정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비코에 따르면 역사는 스스로 표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생활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현실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정신의 본질은 무한정하지만, 그 시대의 질서에 따라 인간생활의 전역을 한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실상황에 대한 인식은 필요성과 유용성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이것에 따라 인간은 진리를 발견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질서라는 것은 ①諸神의 時代 또는 野蠻의 時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