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최종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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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 위안부란?
* 위안부의 역사
* 위안소란?
* 실상
* 생존자 수
* 그 후 생활
* 신고후 생활
* 운동의 출발
* 운동단체
* 한국정부의 대응
* 일본정부의 입장
* 국제사회의 반응
[참고 사이트]
* 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로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정신대`라는 말로 불러왔다. `정신대`는 전시체제 아래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특별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직 등을 지칭한 일반명사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1943년 이후엔 여자정신대 혹은 여자근로정신대에 한정해서 쓰이는 경향이 나타나다가 마침내 1944년 8월에 이르러 여자정신대근로령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부터 정신대란 말은 전쟁 노동력으로 동원된 여자에 한해서 쓰이게 된다. `여자정신근로령`에 의거하여 조직된 여자근로정신대는 남성들의 전쟁 동원으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원래 다른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와 점령지에 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수송, 체계적으로 성노예의 역할을 강요했…
* 위안부의 역사
위안소 설치와 관리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위안부 징집에는 일본군과 경찰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위안부들은 조선과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 등 각지에서 다각적으로 강제 연행하였다.
1938년 말까지 상해, 항주, 구강, 무호, 한구, 남창, 아모이 등에 70여 개가 넘는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1000명 이상의 위안부들이 있었으며 이중 다수가 조선인 여성들이었다. 일본이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도발한 후 입안한 비밀문서인 `조선민족대책`에는 조선의 청장년을 일본 내지에 연행하여 탄광 및 군수공장 기타에 분산시켜 사역한다.`는 조항과 함께 `조선의 미혼 여자를 군대의 특수요무에 충당한다.`는 항목이 있다. 육군성이 주도하고 내무성, 외무성, 일본의 정부 기관들과 조선총독부와 대만총독부가 적극 협력하는 체제였다. 1941년 7월부터 일본군은 對소전을 준비하면서 조선에서 2만 명의 위안부를 모을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갔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의 도움을 받아 8,000 명가량의 조선인 여성을 징집하여 중국 동북으로 보냈다. 이들 위안부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일제는 인신매매와 취업을 미끼로 한 유혹 등 다양하고도 비인간적인 수법을 동원함으로써 위안부 당사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으로 전장이 확대되면서 위안소 설치도 늘어났다. 전투가 필요한 곳에는 어디든지 위안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위안소는 군대 주둔지 어디에나 위안소가 설치되었다. 1943년 1월 현재 일본군 장교 이하의 위안시설이 북부 중국에 100개소, 중부 중국에 140개소, 남부 중국에 40개소, 동남아시아에 100개소, 남해에 10개소, 사할린에 10개소 등 모두 400개소의 위안소가 있었다. 일본군 1개 사단에는 5내지 6개의 위안소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일본 및 조선인 위안부들이 있었다. 전선이 확대되면서 일본의 매춘부나 일반 여성 동원만으로 수요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민지 조선의 처녀들을 동원하여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