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한반도 전쟁위기와 갈등
2. 평화문화
(1) 개념정리
(2) 평화 운동② 국내 평화운동의 사례 양상
⑶ 평화 운동의 한계점
⑷ 한국인들의 관념들에 대한 전쟁, 통일, 평화
3. 평화 문화를 위한 대안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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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 전쟁위기와 갈등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우리에게 이루 말할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었다. 남한만을 따져 보아도 약 150여만명의 군인이 사망, 부상 혹은 실종 되었고 국가 전체 건물의 40% 이상이 파괴되었다. 또한 수천점의 문화재 및 국보가 훼손되었다. 그리고 1,000만 이상가족이 발생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고있다. 종전이 아닌 정전상태가 성립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동안 한반도엔 항상 크고 작은 전쟁위기가 있었다. 물론 6.15 공동선언, 금강산 관광, 햇볕정책을 통한 평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 등의 성과도 있었지만 무장간첩침투, KAL기 폭파사건, 서해교전 등의 사건과 특히 최근 북한의 핵 실험은 다시금 한반도에 전쟁위협을 가져왔다. 이것은 어떤 특정인만 해당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나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며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해왔다. 외교적으로는 쌀, 비료 등 경제적 지원과 6자회담 개최를 위해 노력하였고, 군사적으로는 군비증강을 통해 전쟁도발을 억제해 왔다.
2. 평화문화
(1) 개념정리
- 평화 : 평온하고 화목함 또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 소극적 평화 :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
- 적극적 평화 : `구조적 폭력`이 부재한 …
(2) 평화 운동
① 국외 평화 운동의 사례 양상
와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군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하면서 제국주의 군사적 침략을 둘러싸고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가장 대중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를 가지고 제기하였다.
1986년 이후 반핵운동은 한동안 소강상태였으나, 1994년 핵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고조 되었다. 최근 북한의 핵보유 선언, 핵실험 등으로 인해 반핵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맞고 있다.
- 반전 : 1950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반북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한 냉전문화 시기였으면 이것이 평화운동에 걸림돌이었다. 반전, 평화운동은 냉전문화에 희생되었다고 볼수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특히 1990년대 이후 평화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국가의 노력보단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반전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시위, 미군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사망 촛불시위 등을 꼽을수 있다.
- 반미 : 1960년대 반미운동은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은 남한에서 전개된 최초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미운동으로서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 ‘반외세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는 반독재 투쟁과 노동운동에 주력하면서 반미문제가 크게 불거져 나오지 않게된다. 1980년대의 주요 반미운동사건으로는 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이재호, 김세진 열사 분신 등이 있었다. 1990년대는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투쟁이 있었고, .2000년대는 2002년 촛불시위가 있었다.
- 반북 : 1950~70년대를 살펴보면 이승만 정권은 반공의 제도화를 통해 이념체계를 독점했고 정치적 자유 억압과 정적제거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진보당 당수 조봉암 처형이 대표적이다. 박정희 정권역시 반공을 비판적인 정치활동과 인권억압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1980년대 역시 강력한 국가보안법의 존재로 반공이념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1990년들어서 냉전구조와 와해되면서 이전보다는 약해졌지만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