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서 론
헤겔의 역사적 중요성은 칸트가 얼마 전에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고 말했던 것을 놀라울 정도의 체계적 철저성을 보여주면서 완수했다는 사실에 있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불가능하다고 즉 인간 정신이 실재의 모두에 관한 이론적 지식을 성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헤겔은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형신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일반 명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식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하나의 세련된 형이상학이 있고 그 형이상학은 실재의 구조와 도덕, 법, 종교, 예술, 역사 속에서 실재의 표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유 그 자체에 관한 사고에 새로운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헤겔 철학의 궁극적 쇠퇴는 연구상의 논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포기며 한 요새의 정취라기보다는 대저택의 방기와 같다고 주장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계승자들이 그의 세련된 형이상학적 체계를 무시하기로 단순하게 결정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그의 사상이 그에 뒤이은 세대들에게 미친 영향과 지배력을 그들이 오판했다는 것이다.
이성과 역사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우선은 방법론적 반성의 긴급한 과제임이 밝혀졌다. 이 방법론적 문제는, 경험적 역사기술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창시되었던 (사변적)역사철학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은, 인식과 인식대상의 가능조건에 대한 (플라톤적)반성과 신적인 세계계획과 구원계획에 대한 (종말론적) 설명을 결합시킴으로써, 역사전체를 하나의 보편적인, 목표 지향적인, 그리고 어김없는 사건 연관으로 기술하고자 시도하였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경험적 역사설명은, 역사적 사건의 우연성과 인간 행위의 자유를 지적함에 의해, 반대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방법론 문제가 생겨나왔다. 즉 (우연적 사실들의 총화로서의)역사는 순수이성에 의한 인식(즉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 방법론 …
엇을 인식하는가도 아니고 또 이성이 어떻게 해서 그의 인식에 도달하는가도 아니요 오직 이성이 무엇"인지"가, 과연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성이 역사적으로 변전하며, 과연 또 어떤 의미에서 이 변화의 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을 중심으로 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대상과 그것의 방법을 도외시한, 이성 자체는 무엇"일까"? 이성은 이 경우 이성적 사고작용에 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성의 역사는-그런 것이 있다면 말인데-이성적 사고에 의해 인식되어야 할 일체의 것이 그 안으로 포섭되어야 할 그러한 사고형식의 변화인 것이다.
그렇게 이해할 때, 과연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성이 역사를 가질 수 있는가하는 물음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이성적 사고의 형식을 기술하는 것은 예로부터 형식논리학의 과제로 간주되어 왔다. 논리학과 그리고 이것과 관련되어 있는 수학은 "영원한 이성적 진리"를 찾아 내는 과제를 갖고 있는 그러한 학문의 전형적인 예로 생각되어 왔다. 이성이 그 형식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변천한다고 보는 것은 논리학에 대한 이러한 견해의 배경에서 볼 때 논리학 일반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처럼, 그리고 이성적인(즉 논리학의 영원한 법칙을 따르는) 사고를 주관적인 사고연관의 자의성으로부터 구별지을 일체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성의 (가능한)역사에 대한 물음이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시야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물음은, 이성의 역사의 가정없이는 역사에 대한 일체의 이성적 인식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앞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18세기에 "자연", "자유" 그리고 "이성" 등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파악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열려진, 새로운 철학교육의 역사이해의 가능성들은 18세기에서는 다만 단초적으로만 실현되었을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완전히 전개하는 것은 독일 관념론의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