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보수주의의 등장과 이념의 현실화
Ⅰ. 서론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들 즉, 밖으로는 군사정책과 민주주의 확산정책부터 안으로는 애국심과 미국의 도덕적 가치를 앞세운 교육정책, 이민정책 등에서의 일련의 변화는 미국 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 다른 학파들, 여론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시행정부 중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이들은 주로 이념적이며 강경한 성향을 보여주며, 일방주의적이며 호전적인 특성을 가진 미국적 특성의 본질이라고 칭해지는 -미국의 행정부의 모든 정책결정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전해지는- 신보수주의자들이다. 지금의 신보수주의자가 그들의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유는 9.11테러라는 결정적인 사건의 발생과 1990년대부터 차분히 다져온 정치적 네트워크의 덕분이다. 9.11테러 발생 이후 그들이 내 놓은 대안들은 이라크 전쟁, 후세인 제거로 이어졌고, 현재도 이라크 민주주의 건설로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은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발언 한 부분도 신보수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힘을 통한 미국적 국제주의의 강화라는 부시 행정부의 안보전략은 행정부 안팎에 포진하고 있는 신보수주의자의 중심 이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첫장에서 우리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사회전반에 걸쳐서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여 왔으며 중요성의 중심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국가의 시기별 재정 상황을 토대로 분석해보았으며 그 원인이 되는 시대상의 규명과 정책의 추진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어땠는지 또한 당시 상황 속에서의 신 보수주…
Ⅱ. 본론 1. 신보수주의의 등장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1970년대) 냉전체제 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반공정책에 대한 약화에 따른 안보 우려와 베트남전 이후 활발해진 미국 내 운동권의 확산과 다문화주의로 인한 미국적 가치의 훼손, 그리고 베트남전 이후 확대되던 미국의 재정적자와 사회보장정책 확대에 따른 폐해 등의 대외, 국내적 문제가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당시의 대외적 위협은 카터 행정부의 소련과의 데탕트 추구와 전략핵제한협정 추진 그리고 인권외교를 통한 제 3세계의 친미, 반공 독재정권들에 대한 압력을 가했다 .이는 기존의 냉전정책을 후퇴시키는 대소, 대공 유화정책이었다. 카터 행정부의 유화적 대외정책은 카터의 임기 말에 소련의 팽창 야욕과 침략성을 보여주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사태와 제3세계 급진주의로 볼 수 있는 이란혁명이라는 결과를 가져와 대외적으로 봉쇄정책을 위험에 빠뜨리고, 중동지역에 불안정을 야기하는 미국과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국내적으로는 “위대한 사회”건설로 인해 복지국가가 경제적으로 파탄 났고, 베트남전 이후 팽배해진 국내 운동권의 확산과 다문화주의로 인한 국내 무질서에 대해 집권당인 민주당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Kristol, Neoconservatism, pp. 18-21) 여기에 당시 미국경제가 빠진 스테그플레이션의 늪은 국내적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1970년대의 대내외적 문제점을 안고 출범한 공화당 정권인 레이건 행정부는 대내적으로는 레이건노믹스를 대외적으로는 소련봉쇄정책이라는 신보수주의자들이 제공한 논리가 상당부분 작용된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일치하는 정책을 펼쳐나갔다.
국내적으로는 자유방임적 질서를 반대하고 뉴딜의 기본원리에는 찬성하지만 기존의 사회보장정책의 범위를 더욱 축소시키는 시장 중심적 질서로 가야한다는 이들의 입장은 레이건 노믹스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행정부에 포진한 신보수주의자들인 커크패트릭과 에이브람스 등의 대외정책은 소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