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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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마지막 주 4일간 개최
한 해 300만 유로
(한화 약 46억 원)
도시 전역에서 다채롭게 개최
22만 명 방문 (2xxx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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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발 배경
계속되는 경제난
‘특징없는 도시’
1972년 ‘천만개의 이미지’ 행사 개최
1974년 ‘제 1회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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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예술의 성지’ 앙굴렘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도시 개조 프로젝트 도입
- “도시의 기반 인프라 자체를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바꾸자”
1985년 미테랑 정부 ‘국립만화 영상센터(CNBDI)’ 건립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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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DI
Centre national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국립만화영상센터
1984년 프랑소와 미테랑 대통령의 추진 사업 일환으로 건립논의.
문화성 장관인 자크 랑 장관
만화박물관 + 만화정보자료관(미디어테크) +디지털이미지센터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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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BDI
La cite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ee et de l’image, 국립만화이미지단지
상공업적 문화공공기관
창작자와의 교류증대
정부+앙굴렘시+샤랑트도+포와트+샤랑트
- 일반임무:
① 만화관련 물품들을 수집, 보관, 연구, 평가, 서비스
② 작가들을 지원, 창작할 수 있는 여건 조성
③ 만화와 관련된 모든 다른 예술적 문화적 행사들을 조직
- 특수임무:
작…
헤딩’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유럽에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 산업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이를 받쳐줄 시스템이 없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날 공간이 없었고, 정보 교환도 마땅찮았다. 앙굴렘이 이 시장을 우연찮게 선점하게 된 셈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만화축제 기획에 참여해온 앙드레 베르나르는 “앙굴렘은 너무나 몰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앙굴렘 만화축제는 전통적인 축제와는 전혀 다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휴가나 관광이 가장 뜸한 1월에 열리는 데다, 축제를 위한 별도의 전시장이나 공간도 없다. 베르나르는 “1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유럽에서 비수기인 1월에 열리는 축제가 오히려 독특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길거리나 건물을 막고 전시회를 여는 것에 대해서도 방문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 1월 열린 37회 앙굴렘 만화축제에는 무려 27만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관람객들은 축제기간 동안 앙굴렘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만화 전시와 애니메이션 상영, 콘퍼런스, 작가와의 대담, 만화콘서트 등에서 ‘만화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맛보고 돌아갔다.
●만화로 체질 바꾼 도시
앙굴렘이 ‘만화예술의 성지’가 된 것은 축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앙굴렘 시 당국과 시민들은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도시의 기반 인프라 자체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맞춰 바꾼다는 취지였다. 프랑스 중앙정부도 만화도시로서의 앙굴렘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5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앙굴렘에 ‘국립 만화 영상 센터’(CNBDI) 건립을 약속했고 실제 지원이 시작됐다. CNBDI는 전세계에서 발간되는 모든 종류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갖춘 도서관, 영화관, 특별전시실 등을 포함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단지로 10여개의 건물이 지어졌고 20여년 넘게 진행돼온 센터 건립 프로젝트는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