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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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역사와
철학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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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시대적 배경 P33
고려는 왕건이 왕위에 오른 918년 부터 조선이 건국된 1392년까지 475
년간 존속한 사회이다.
956년- 광종에 노비안검법(奴婢案檢法) 실시
노비해방
정치 경제적 기반 약화.
958년 -인재등용을 위한 과거제도 실시
호적들의 중앙정계로 진출 제한.
960년- 관료들의 공복 제정.
-사상면에서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했던 시대.
(수신의 도로서는 불교,치국의 도로서는 유교)
4대 종은 과거제도를 설치하여
유교적 지식을 갖춘 문신관료를 등용하였다.
6대 성종은 국자감의 설치 권학관의 파견 등과 같은 강력한 숭유정책으로 유교를 정치의 지배적 사상체계로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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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교육제도 P34~42
-고려는 유교적 통치이면을 내면화한 관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 교육제도의 기틀이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한 것은 6대 성종시대였다.
1) 국자감
- 성종 11년(992)에 왕명에 의해 설립되었다.
- 17대 인종 1년(1123)에 식목도감을 설치하여 학식과 학규를 세밀이 정비하고 국자학 · 태학 · 사문학 · 율학 · 서학 · 산학 등 6학을 두었다.
- 설립당시 국자감 → 25대 충렬왕 국학 →
26대 충선왕 성균관 → 31대 공민왕 국자감 → 조선시대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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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감의 구조 P34~ 42
대성전 · 양무로 구성된 문묘와 명륜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묘 : 공…
2) 향교 P32~42
관리의 자제 및 서민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세운 중등교육기관이다. 설립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성종6년(987)에 12목에 관학관으로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여 관리와 일반 백성의 자제를 가르치게 했고, 인종 5년(1127)에 “제주는 학교를 세워 널리 교도하라” 는 조서를 내려 학교를 설립하게 하였다.
향교의 기능과 수준
- 국자감과 유사하게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과 선형에 대한 제사를 담당하는 문묘가 설치되어 있었다. 개경에 설립된 국자감의 축소판으로서 교육의 기능과 제사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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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의 교육수준 P32~42
-향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를 국자감에 진학시킨 것으로 보아
국자감보다 한 단계 낮은 중등 수준이었다.
향교의 입학
-8품이상의 자제와 서인에게 허용되었다.
향교의 교육과정
-대체로 국자감과 유사했을 것이나 교관이 충분이 충원되지 못하고 재정적
여건 역시 매우 불충분했던 점으로 볼 때 과목 수나 질적 수준에서 국자감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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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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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당
-고려 후기에 개경에 설치된 관학으로서 지방의 향교와 수준이 유사한
중등교육기관이다.
-학당은 1261년(고려 원종2)에 동·서의 두 학당(學堂)을 처음으로 설치하여 각각 별감(別監)을 두고 가르친 것이 그 처음이다. 그 뒤에 유교 가 불교에 대신하여 사상계를 지배하게 되자 개경 의 각 부에 학당을 설치하여 5부 학당(五部學堂)으로 정비 강화되었다.
학당의 특징과 교육내용
-지방의 향교가 명륜당과 문묘를 동시에 설치하고 있었음에 비해 학당에는 명륜당만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학당의 교육내용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P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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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P3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