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천왕사지와 장항리사지를
통해 본 신라의 불교
장항리사지 전경
사천왕사지 전경
분류
절터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낭산(狼山)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동남쪽
● 답사 포인트
1. 사천왕사지의 위치적 특성과 가람배치 양식을 통해 신라의 불국토 사상과 호국불교의 특징을 이해한다.
2. 장항리사지의 기존 신라의 토속신앙과 불교사상이 드러난 탑과 불상 양식, 가람배치 양식을 통해 신라 불교사상의 과도기적 특징을 이해한다.
3. 두 사찰의 비교를 통해 사찰에 담겨있는 불교 사상과 신라 불교 흐름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
<목 차>
Ⅰ. 서론
Ⅱ. 사천왕사지
Ⅱ-1. 창건배경 및 관련설화
Ⅱ-2. 위치적 특성
Ⅱ-3. 가람배치양식
Ⅱ-4. 출토 유물 (당간지주, 귀부2기, 서탑지)
Ⅲ. 장항리사지
Ⅲ-1. 창건배경 및 관련설화
Ⅲ-2. 위치적 특성
Ⅲ-3. 가람배치양식
Ⅲ-4. 출토 유물 (서탑, 동탑, 불상)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Ⅰ. 서론
경상북도 경주 지역은 BC57년부터 992년간 신라의 수도로서, 고대 신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우리나라 세계문화 유산 중 도시…
천왕사지 전경
1. 사천왕사지의 창건 배경 및 관련 설화
사천왕사지에 관한 이야기는 선덕여왕 시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덕여왕과 관련된 설화는 삼국유사 권1 기이편에 수록된 선덕여왕지기삼사설화(善德女王知機三事設話)를 통해 알 수 있다.
선덕여왕지기삼사설화는 총 세 가지 설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사천왕사지와 직접 관련된 이야기는 선덕여왕에 관련한 이야기이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을 날을 신하들에게 미리 예언했고, 생전에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면서 자신을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신하들에게 부탁하여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묻자 낭산 남쪽이라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그 후 선덕여왕은 정말 자신이 예언한 날에 죽었고, 신하들은 여왕의 유언을 들어 선덕여왕을 낭산 남쪽에 묻었다.
그 후 10여년 뒤인 674년(문무왕 14)에 당나라는 신라가 자신들의 도독부(당시 계림도독부)를 공격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50만 대군의 군사를 준비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문무왕은 이 사실을 깨닫고 명랑법사를 불러 해결책을 구하는데, 명랑법사는 선덕여왕이 묻힌 이 곳 신유림에 사찰을 하나 지어 부처의 힘을 빌릴 것을 권한다. 그리하여 문무왕은 신유림에 사찰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다 지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문무왕은 비단과 풀을 이용해 절의 모습을 임시로 완성시켰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풍랑이 일어 당나라의 배들이 다 뒤집혔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5년 만에 문무왕은 이곳에 절 하나를 완성하게 되고, 이를 사천왕사지라 이름 붙이게 된다.
이 두 배경과 설화를 통해 낭산을 수미산처럼 여기던 신라인들의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볼 수 있고, 동시에 호국신앙으로서의 당대 불교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 당시에는 불교가 단순히 종교로서 내세를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국위를 떨치며 절대적인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여 국론을 통합하는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라시대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