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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 - 사진의 역사
초창기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의 원리는 닫힌 어두운 상자에 구멍을 뚫고 빛이 작은 구멍을 통과 하여 맞은편에 상을 얻는 것이다. 이때는 옵스큐라의 크기는 너무 커서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는 작은 구멍대신 볼록렌즈를 붙이고 상이 찍히는 측면을 불투명 유리로 해서 이곳에다가 종이를 대고 이미지를 따라서 연필로 그렸다. 17c세기부터는 옵스큐라에 비친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진가들이 노력하였는데 은의 혼합물 중에 어떤 성분이 빛에 닿으면 검게 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지가 완전하게 검게 변해버려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게 제일 큰 고민 거리였다. 카메라 루시다는 19세기초에 영국인 월래스틴에 의해 발명되었다.
화면위에 원근법 적용을 보다 쉽게 하려는 위도에서 발명되었고 휴대하기가 쉽고 반영된 이미지를 동시에 보면서 작품제작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화가들에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영구적인 사진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 중부에 거주하던 발명가 조셉 니셉포르 네엡스 였다. 그는 발명가로 선판인괘를 실험하고 있던 중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강렬한 햇빛 속에 특수한 약품처리를 한 판을 오랫동안 놔두면 이미지가 맺힌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니엡스는 용해된 라벤더 오일에 비투멘을 노여 백랍을 판에 발랐다. 그것을 카메라 옵스큐라에 넣어 자신의 정원을 향해놓고 8시간을 노출을 주었다. 빛이 많이 들어오는 부분에는 비투멘이 단단해 지고 어두운 부분은 비투멘이 …
교훈적인 내용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중 레일란데르의 작품들중 성인이 도덕적인 설교를 하는《인생의 두 갈림길》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이것은 소녀가 꺼져가는 등불처럼 죽어가는 정경을 연출해서 찍은 로빈슨의 《임종》이라는 사진과 함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회화적 사진에 반기를 들고 1889년 영국의 에머슨이 자연주의적 사진을 제창하고 나섰다. 자연주의적 사진이란 인간의 육안에 의한 시각 상에 될 수 있는 대로 접근한 영상을 얻으려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망막에 비치는 시각상의 둘레가 실제로는 희미해지는 사실대로 대상을 충실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렌즈의 주변을 약간 아웃 포커스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에머슨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생활주변의 자연풍경을 많이 찍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후계자들이 그의 연초점묘사의 과학적인 본래의 의도를 저버린 채 회화적인 효과를 위한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버렸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그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개하여 끝내 사진계를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19세기의 사진사는 한마디로 회화적 사진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사진의 표현성을 렌즈의 묘사력과 메커니즘의 기능에 근거를 두고 선명한 핀트와 솔직한 사실주의로 영상의 현실감을 회복하려고 한 사람이 미국의 스티글리츠였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의 사진을 순수사진이라고 하는데, 종래의 회화적 사진에서 볼 수 있었던 지나친 문학성이나 우화적 내용을 떨쳐 버리고, 사진의 자율적인 새로운 기틀을 이룩하였다. 또한 그는 예술적 표현을 시도할 때에는 대형카메라를 써온 일반적 관례를 깨고 소형카메라를 써서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시적인《종착역》이나《3등선실》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리하여 스티글리츠는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스티글리츠의 직접적인 영향은 미국의 스타이켄이 이어받았으며, 이 맥은 다시 웨스턴이 계승하였다. 웨스턴은 언제나 대형카메라를 썼으며, 또한 조리개도 F64의 최솟값으로 죄어서 선명한 핀트를 강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