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서론
항일 투쟁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된 한국사관인 식민사관에 대항한 단재 신채호 선생과 자산 안확 선생은 한국의 역사가 왜곡되는 상황에 대항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운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과 자산 안확 선생은 식민사관에 맞선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들의 사상이나 항일운동의 방향 등 많은 것에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본 글에서는 그들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밝혀내고자 한다.
? 본론
-신채호의 생애
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만민공동회운동은 유학을 신봉하던 그를 개화 자강론자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1905년 장지연이 사장으로 있던 ‘ 황성신문’의 논설 기자로 들어가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황성신문’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 <시일야 방성대곡>이 발표되면서 그는 횡성신문에서 사임해 ‘대한매일신보’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폭로하며 항일운동을 보도하며 애국계몽운동과 국권회복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해나갔다. 또한 그는 3.1운동을 통해 임시정부를 조직했지만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에 반대하여 결별하고 김원봉의 간곡한 요청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또한 그는 <조선 상고사(朝鮮上古史)>라는 저서를 통해 그의 역사관을 알 수 있다.
-안확의 생애
안확은 1886년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신분으로 보면 중인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울 수하동에 있던 소학교에서 독립협회의 활동을 보게 되면서 자신의 인식체계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의 국권이 …
-단재 신채호와 자산 안확의 공통점과 차이점
? 결론
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는 조선의 정치를 독립적이고 진화된 것으로 이해했으며, 당쟁을 통해 당들은 부패할 수 없다고 보았고, 당파정치가 성행하던 숙종시기는 조선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는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붕당정치로 인해 통치능력을 상실했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할 수 밖에 없다는 붕당과 당파성론을 반박했다. 또한 그는 우리 것에만 집착하지 않았으며, 고유한 것 못지 않게 외래 문화의 접촉을 통한 자기발전의 과정을 중시하였다.
신채호와 안확은 초기에 독립협회와 대한임시정부에 가입,참여하여 활동을 했지만 신채호는 이승만의 ‘위임통치’로 인해 임시정부를 탈퇴하게 되었고 무정부주의자로써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며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반면 안확은 신채호와 달리 독립협회와 임시정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갔으며, 마산을 중심으로 독립을 위한 자금조달과 마산의 창신학교에서 8년간 교사로 재직하면서 인재양성과 실력배양을 강조하였다.
? 결론
이상에서 신채호와 안확의 독립운동의 방향과 역사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들은 항일투쟁시대의 위대한 민족사학자로써 신채호는 고대사를 바로 잡기위해 노력했으며, 안확은 조선시대사를 바로잡고 이것을 통해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선 점에서 그들은 단순한 역사학자가 아닌 진정한 독립운동가로 봐야하며, 그들의 독립 정신과 가르침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