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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항해[그 과정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 서술]
-콜롬부스 그는 누구인가?
누구나 콜롬부스1)라는 사람을 한번쯤은 들어는 봤을 것이다. 물론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떠한 업적을 세웠는지는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이번기회를 통해 그의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탐험가 콜롬부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태생으로, 1477년 포르투갈에 출현하기 전까지의 행적은 아직도 상세한 기록은 없으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항해사라고 불려 졌다. 그는 자신을 결코 제노바인으로 여기지 않았고 제노바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언어 또한 이탈리아어를 쓰지 않고 항상 스페인어를 사용했으며 그의 부모 또한 1300~1700년대까지 스페인이 제노바를 지배하던 기간에 그곳으로 간 스페인 상인 이었다고 한다. 1479년 포르투갈에서 선장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자인의 영향으로 해도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는 궁리 끝에 서쪽으로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여도 인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결론짓게 되었다고 한다.
콜롬부스는 1484년 포르투갈의왕 환 2세에게 대서양 항해를 위한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통한 항로를 이미 준비 중인 왕은 이 의견을 거절하였다. 그해 그는 스페인으로 가서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당시 스페인은 재정복 전쟁으로 여념이 없어서 요청이 또 한 번 무산되자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그는 이후 제노바, 베네치아, 프랑스, 영국 등에도 지원을 요청 하였으나 좌절되자 다시 스페인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에…
-역사적인 첫 번째 항해
-두 번째 항해
-세 번째 항해
-네 번째 항해
콜롬부스는 탐험가인 외에도 항해 중에 국왕부처에게 보낸 편들과 원주민 및 새로운 땅들에 대한 느낌들을 기록한
구아달루페, 안티구아와 푸에르토리코를 발견하였으나 본국으로 보낸 주요 내용이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1496년 스페인으로 돌아오자 문책을 당하였다. 이렇게 콜롬부스의 항해는 첫 번째 이후에 급격이 신뢰를 잃게 되었다.
-세 번째 항해
그의 세 번째 항해는 1498년~1500년에 이루어 졌는데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라나다와 남미대륙의 오리노꼬강 하구를 발견하였으나 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서 내부 반란이 이러나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되어 본국으로 송환 되었다.
-네 번째 항해
네 번째 항해는 1502년에 이루어 졌는데 페르난도와 이사벨이 지원해준 작은 배 4척을 타고 떠났다. 포르투갈의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하자 자극을 받아 항해를 허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힘든 항해였는데 동참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 항해에서도 금은보화를 찾지 못한 콜럼버스는 1년 동안 자메이카 해안에 갇혀 고생 하다가 1504년에 에스파냐로 돌아왔다.
1504년 이사벨 여왕이 죽자 콜롬부스의 지위는 더욱 몰락하였으며 그의 직책에 대한 세습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관절염을 앓다가 1506년 잊혀진 인물이 되어 세상을 떠났으며 마지막 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고 있었다. 에스파냐 왕실에서는 아무도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1542년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그가 일군 식민지인 히스파니올라에 새로 건립된 산토도밍고 대성당에 콜럼버스의 시신을 옮겨 묻었다. 최근 1991년 10월 콜롬부스의 후손중 하나인 크리스토발 콜린 데 카르바할이 뉴멕시코를 개인적으로 방문 하였다. 그는 위대한 탐험가의 20대 직계후손으로 베라구아 공작, 베가 공작 그리고 하마이카 후작의 작위들을 지녔으며 그것들은 페르난도와 이사벨 국왕부처가 위대한 탐험가 콜롬부스와 그의 후손들에게 수여한 것이다.
콜롬부스는 탐험가인 외에도 항해 중에 국왕부처에게 보낸 편들과 원주민 및 새로운 땅들에 대한 느낌들을 기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