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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제 3의 시각 -
조선의 시대상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들은 당시의 조선인들이 아니었다. 조선말부터 조선을 여행하거나 살던 일본인들이 외국인으로서 그들이 미리 숙지하고 있었던 근대 사학을 통하여 조선의 시대상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의 사론은 조선사회 정체론으로 집약된다. 조선사회 정체론으로 본 당시의 조선은 진보의 속도가 극히 완만하여 보통의 건전한 사회에서 예상되는 발전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제시한 정체론에 대항하여 일제시대부터 내재적 발전론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대두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사에도 세계사의 발전법칙이 관철되어 봉건제가 존재하였으며, 조선후기에 자본주의 맹아 등이 나타나 자생적인 근대화의 전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관은 두 차례의 큰 변화를 겪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내재적 발전론을 견지하는 입장과 그것을 부정하는 입장이 대치하는 형국이다. 논문의 필자가 이 글에서 ‘제3의 시각’이라고 한 것은 사학사적으로 조선사회 정체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이은 세 번째의 사론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현시점에서 내재적 발전론과 그것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입장과는 다른 제3의 시각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러한 시각은 일제시대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수탈론 및 식민지 근대화론과 다른 제3의 시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제3의 시각의 첫째 특성은 대립하는 두 시각을 절충하고 종합하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근대화에 필요한 물이 컵에 많이 차올랐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역사상을 제시하지만, 자본주의 내지 근대경제로 이행하기에는 물이 여전히 많이 부족하였다는 점에서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다. 둘째, 제3의 시각은 내재적 발전론…
◆국가제도·정치·해정의 발전과 그 한계
◆경제의 성장과 변동
하게 작용하다가, 후기 내지 말기에는 지방세력의 성장으로 인하여 분권화를 낳는 원심력이 나타났다. 그러한 순환의 가운데 장기적으로는 집권관료국가로 지향하는 추세가 있었고, 조선초에 그 완성을 보기에 이르렀다. 한국사에서는 유럽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분권적 봉건사회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의 집권국가제도를 원활히 도입할 수 있는 데다가 분권적 정치체제로서는 중국과 만주세력의 압박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봉건시대를 경험하지 못하여 자치도시와 의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원성이 약하였다. 이런 한계뿐만 아니라 집권국가 발전의 긍정적 유산도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의 성장과 변동
앞서 조선 초 국가제도의 발전 수준이 높다고 하였는데, 이 시기 조선의 과학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농업기술도 발전한 편이었다. 그런데 조선 초에 농촌 정기시가 소멸해 있었고 동전의 유통에 실패한 데에서 드러나듯이,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15세기의 시장은 9세기보다도 위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시장의 위축은 대외적·대내적 요인을 가진다. 조선보다 먼저 건국한 명나라가 재정의 현물화를 추진하고 사무역을 억제하는 조공질서를 강화한 국제환경은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15세기 명나라와의 교역은 사무역이 일체 금지되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농촌 정기시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였다. 장시는 1470년경 전라도에서 처음 출현하였는데, 1520년에는 각 도에 열리고 있었다. 18세기 중엽 전국에는 5일마다 열리는 장시가 천개에 달하였는데, 당시 정기시의 밀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포구와 도시의 상업도 성장하여, 조선시대에 시장은 뚜렷이 성장하는 추세였다. 금속화폐는 매우 늦게 1678년부터 통용되었으나, 빠르게 전국적으로, 그리고 농촌에까지 보급되었다. 조선전기에 경제는 재정 등 국가재분배를 중심으로 통합되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시장을 위주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시장 발달은 경제수준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