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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와 정당성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평등에 관한 명문은 페미니즘에서만큼은 전혀 명증하지 않다. 여성과 남성의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고민부터, 차이는 상상되고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서로 타협할 방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목소리들이 페미니즘의 느슨한 경계 속에 포함되어있다. 아마, 성차의 의미를 둘러싼 논의는 페미니즘이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나는 ‘같음-다름’ 논쟁은 ‘같아야 한다’나 ‘틀려야 한다’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머무르는 한 해소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문제는 항상 그 둘이 얽혀있는 있는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보다 본질적인 부분과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따름이다. 문제의 근원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성차를 3개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 번째 유형은 생물학적 성차(sex)이다. 여성과 남성의 몸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기능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에 대해 생물학적 성차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돌아올 수 있다. 만약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의 영역까지 고려한다면 과학의 중립성과 윤리에 관한 시비에 휩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성차와 구분되는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징들만 인정한다.
두 번째 유형은 생물학적 성차에 기반한 사회적 성차(gender)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봐르의 주장은 개인의 자아형성에 사회문화적 배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문화양식의 형성에 생물학적 성차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확대될 수는 없다. 위에서 언급한 생물학적 차이들은 문화가 형성되는 초기단계에서 고려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며, 남녀역할 분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지막 유형은 생물학적 …
1) 정당하지 않은 성차가 올바르다고 인식되는 경우
2) 정당한 성차가 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
사회참여를 배제하는 담론에 반발하며 생겨난 ‘여성은 여성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남성과 동일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 속에는 여성이 지향하는 사회의 주요부문의 대부분이 남성들의 전유물로 상상되고 있다는 함의가 숨겨져 있다. 남성은 자율적 시민이기 위한 조건을 이미 충족했지만, 여성은 시민이기 위해 ‘여성성’이라고 규정되는 존재양식을 포기해야 한다. 근대 ‘시민’의 정의에는 정당화될 수 없는 성차가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 한 예가 여성의 ‘엄마’로서의 정체성이다. 여성의 본질은 모성과 돌봄에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양육의 우선적 책임 역시 어머니에게 있다는 가부장적 의식은 여성의 ‘출산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출산 해야 하는 당위성’으로 전환하였다. 모성에 관한 가부장들의 합의가 나타나는 방식은 식민주의 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제국과 민족의 갈등 상황에서 남성의 역할은 사회전면에 등장하여 배우거나 일하는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는 반면, 여성들은 제국의 신민이나 민족의 아들들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역할로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은 현대사회까지 이어져 여전히 여성의 사회적 성공은 모성의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 가능한 것, 혹은 모성의 책임을 애초부터 지지 않은 채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경우 상상된 성역할은 가부장적 젠더 개념에 의존하며,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도 성차별을 가능하게 만든다.
2) 정당한 성차가 존중 받지 못하는 경우
성차별적 인식에 의해 여성의 주체성이 낮아지고 사회참여가 제지 당한다는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여성이 가지고 있는 남성주체와의 차이를 무조건 최소화시키려는 접근은 답이 될 수 없다. 비록 성차에 대한 인식 중 많은 부분이 남성중심적으로 상상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 다름은 존재하며,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모성’은 여성의 본질로 상상되어 자기결정권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