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그림형제의 생애와 작품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은 필립 빌헬름 그림과 도로테아 그림 사이에 5남 1녀 중 첫째와 둘째 아들로, 1785년 1월 4일과 1786년 2월 24일에 독일 헤센 주 하나우에서 태어났다. 야콥과 빌헬름의 증조부와 조부는 프리드리히 그림이라는 이름을 같이 썼으며, 직업도 똑같은 목사였다. 특히 그들의 증조부 프리드리히는 그림 가문에 가장 의미 있는 인물이었으며, 그림 가문의 근간이자, 커다란 기둥이었다. 그의 아들, 곧 야콥과 빌헬름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그림은 슈타인아우에서 신교개혁파 목사로서 시무하다가 죽었다. 그의 유일한 동생 요나스 그림도 목사였고, 훌륭한 신학자였다. 이 같은 선조들의 신앙적 삶은 훗날 야콥과 빌헬름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법률가였던 아버지 필립 빌헬름 그림은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 야콥은 자신을 가족의 우두머리로 여겼으며, 그의 형제자매들은 그의 위치를 인정하였고, 따라서 그는 아버지의 권력의 계승자였다. 야콥보다 단지 13개월 어린 빌헬름도 그 형의 위치를 죽을 때까지 인정하였고, 항상 복종하였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에 대한 커다란 책임감이 두 형제의 마음을 지배하였고, 그들은 가계의 연장자로서 가족들을 돌볼 의무를 느꼈다.
야콥과 빌헬름은 하나우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슈타인아우를 그들의 고향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들은 카셀로 갔고 그곳에서 그들은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기를 보냈다. 1802년 야콥과 빌헬름은 카셀에서 가톨릭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대학공부를 위해 마르부르크로 갔다. 두형제는 그곳에서 법학자 사빙니 교수를 만나 법학을…
괴팅엔 대학의 교수로서 그들은 소위 ‘괴팅엔의 7인’의 일원이 되어, 1837년 하노버 왕의 헌법위반에 대한 공개적 항의에 참여하였다가 파면당하는 동시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래서 같은 해 그들은 카셀로 되돌아왔다.
착수하여 1837년에 완성한 『독일어 문법』은 역사적 독일어 연구의 업적물로서 후대 언어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것은 비교적 고찰을 바탕으로 한 독일어의 문법서로 음운 변화의 법칙성을 인식한 ‘언어사’였다. 그는 덴마크의 언어학자인 라스크에 의해 준비된 자음 추이의 인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모음수의 역사적인 변화를 확립하였다.
1828년 그는 또한 사빙니 선생으로부터 의해 자극을 받아서 『독일 법제사 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집은 법률 용어와 상징적인 행위들을 잘 묘사하여 법률의 시문학으로 간주되었다. 이듬해인 1829년 산문의 대가이자 중세문학에 식견이 높았던 빌헬름 그림은 『독일 영웅전설』을 출판하였다. 여기서 그는 6~16세기의 문학과 미술의 영웅전설에 나오는 주제와 이름들을 문학형식에 맞춰 평론하였다. 1835년 야콥은 이전 시대에 대한 찬미가 가장 강하게 나타났던 『독일 신화』에서 희박한 이전의 민간 전승을 구체화하였으며, 학문으로서의 민속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괴팅엔 대학의 교수로서 그들은 소위 ‘괴팅엔의 7인’의 일원이 되어, 1837년 하노버 왕의 헌법위반에 대한 공개적 항의에 참여하였다가 파면당하는 동시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래서 같은 해 그들은 카셀로 되돌아왔다.
약 4년 후인 1841년, 그림 형제는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 의해 학술원 위원으로서 베를린에 초빙되었다. 그리고 베를린 대학 교수로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독일 고대 문화유산의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였다. 1848년 야콥이 두 권으로 된 『독일어사』를 완성하였고, 그 속에서 구전되어 온 게르만 어를 정립하였으며, 비교에 의한 고대 언어학의 대담한 사용은 고대 게르만 역사와 민속학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만년인 1852년부터 그림 형제는 『독일어 사전』이라는 거대한 작업에 착수하면서 그들의 생애를 마감하였다. 여기서 야콥과 빌헬름은 신고지독일어 어휘를 완전히 모아서 어원적, 역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총 16권 중 1권과 3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