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윤리학적 형식주의
공리주의로 대표되는 목적론적 윤리학은 “행동은 그것이 옳은 결과를 갖는 한 옳다.‘ 혹은 ’행동은 만약 일반적으로 준수되면 좋은 결과를 갖는 일련의 규칙에 따르는 것이 옳다.‘ 이다. 이에 상대적인 위치에 있는 의무론적 윤리학설이다. 의무론적 윤리학은 ‘행동은 의무의 최고원리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행위의 규칙에 일치하면 옳다. 그런데 그 의무의 원리 자체는 좋은 결과를 산출하는 문제와 상관이 없다.’ 이다.
>>칸트와 의무론적 윤리학
칸트는 윤리학에 대한 자신의 대표적 저서를 지었는데, 『도덕 형이상학 정초』이다. 윤리학은 선을 추구하는 체계적 학문이다. 그런데 칸트는 윤리학이 선험적이여야 한다고 한다. 선험적이란 인식 이전을 말하며 현재 선천적이란 말과 적합성이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윤리학은 또한 대상에 대해 순수한 이론적 탐구를 목표로 하는 ‘형이상학’이여야만 한다고 한다. ‘도덕 형이상학’이란 가능한 순수 의지의 이념과 원리들이 되겠다. 여기서 가능한 순수 의지란 인간의 순수 의지가 해낼 수 있는 범주 안을 뜻한다. 결국『도덕 형이상학 정초』는 이러한 ‘도덕 형이상학’의 토대를 놓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모든 도덕성의 최상의 원리를 찾아내어 확충하려고 한다.
행동의 최고 원리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행위의 규칙이란 말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겠다. 우선, 최고 원리는 선의지이다. 선의지란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하기 위해 발휘하게 되는 선한 의지다. 그런데 이 선의지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지 상대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다. 즉, 선의지란 이 세계 안팎으로 유일하게 그 자체로 조건없이 선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선의지의 개념은 의무의 개념인데, 오로지 도덕적으로 옳으므로 행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이루어진다. 행위의 규칙이란 것은 이 윤리학설이 형식주의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이 말은 선의지의 명령에 따르는 행위의 규칙들이다.
>>정언명령
칸트는 …
의미하게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개개의 이성적 존재자가 자신의 모든 준칙을 통해 보편적인 법칙을 수립해가는 사람으로 간주된다면, 이들은 다른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는 목적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나라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이성적 존재자가 공동의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고 이 법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이성적 존재는 그 자신이 도덕적 존재인 한에서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항상 목적 자체로 대하는 목적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의무
칸트는 의무에 대해 이렇게 3명제를 들어 말한다. `의무에서 나온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가진다.`는 말과, `의무에서 나온 행동은 그 행위를 통해 성취하게 될 행위의 의도속에 그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규정하는 준칙에서 갖는다.`와,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필연성이다.`이다.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 때문에 생겨나는 필연적 행위다. 즉, 의무에서 나온 행위는 개인의 주관적인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향성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법칙 자체만을 고려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경향성이란 `자신의 행복과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정한 성향`을 뜻한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의무에 맞다는 점 때문에 성립하는 경우가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행한 경우다. 왜냐하면 어떤 행위가 비록 의무에 맞는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의무로부터 기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의지는 자유롭다. 정해져 있는 데로 행동하지 않는다. 도덕적 존재자이며 나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칸트는 이에 부유한 젊은이의 우화를 들어볼 수 있다. 거지에게 자연스럽게 돈을 주는 순진한 부자 젊은이가 도덕적인 인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젊은이의 본능적 관대함의 결과는 분명히 거지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자신의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