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병철의 리더십과 기업윤리
Ⅰ. 서론
Ⅱ. 이병철은 누구인가?
1. 이병철의 생애
2. 이병철에 대한 평가
Ⅲ. 이병철의 기업가 정신
1. 인재제일주의 정신
2. 합리주의 정신
3. 일등주의 정신
4. 책임주의 정신
5. 무노조 산업평화주의 정신
Ⅳ. 이병철의 리더십
Ⅴ. 이병철의 기업윤리
1. 이병철의 경영 15계명
2. 이병철의 기업 윤리경영
Ⅵ. 느낀점
Ⅰ. 서론
경영자의 리더십과 기업윤리에 대한 과제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 삼성이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드셨고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하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병철 삼성 전 회장 이다.
이병철 전 삼성회장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재벌가들처럼 장자 위주의 승계가 아닌 철저한 사업 경영에 기반을 둔 것도 달리 보였지만 삼성이란 대기업을 일군 그의 혜안과 깊은 통찰력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개발하고 발전해내는 능력이 이병철 회장을 선택하게 하였다.
‘이병철이 누구냐’고 딱 한 마디로 소개하라면 물론 ‘그 유명한 삼성그룹의 창업주’라는 말로 답변할 수 있겠지만, 대신 ‘이병철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난 이병철 선생은 강직한 가풍속에서 비교적 유복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이병철 선생은 다섯 살 때부터 조부인 문산 이홍석 공이 세운 서당 문산정에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고, 열한 살 되던 해에 진주에 있는 지수보통학교에 편입, 이듬해에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옮겨 수학했다. 그 후 중동중학교에서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1926년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 박두을 여사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에도 학업에 전념하던 이병철 선생은 1930년 4월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그 무렵 세계적인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심한 경제혼란이 빚어낸 사회상을 목격할 수 있었던 이병철 선생은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아 동경의 유학생활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귀국하였다. 귀국한 이병철 선생은 몇 년 동안 깊은 사색과 구상 끝에 일제 식민치 치하에서 민족경제의 건설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사업에 투신하기로 결정했다.마산에서 정미업, 운수업, 부동산업을 하며 사업경험을 쌓았던 호암선생은 무역업을 통한 사업보국의 뜻을 펼치기 위해 1938년 3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삼성그룹의 싹을 틔웠다. 삼성상회의 성공에 힘입은 호암선생은 1939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탁주와 청주, 소주뿐만 아니라 사이다까지 생산하며 삼성의 토대를 쌓았다. 호암선생은 해방 후 무역업에 재도전하기 위해 서울로 무대를 옮겨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 삼성물산공사는 홍콩과의 직접 교역을 통해 급성장했으나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2. 이병철에 대한 평가
-성공을 위한 치열한 승부근성을 갖고 자신의 단점을 되짚어 스스로 고쳐가며 성공의 길을 현실화시켜나가는 것! 삼성이 걸어왔던, 말만큼 쉽지 않았던 그 길의 한 가운데에는 바로 호암이 있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이 걸출한 사업가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알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으로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구었으며, 오늘날 삼성이 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