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하는가
인간은 모두 죽는다. 우리는 영원을 갈망하지만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이 살아 봤자 100년을 넘기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보다 소중하고 우리의 오늘은 어제와 내일 보다 가치 있다. 하지만 우린 늘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좋은 중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유년기를 희생하고,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청소년기를 희생한다. 꿈을 꾸고 자아를 탐색해야 할 시기에 경쟁적으로 암기기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이러한 ‘희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학 생활의 낭만은 좋은 직장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성적과 각종 자격증 시험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20대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사색하기를 포기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두 눈을 감고 고민하기를 멈춘 젊은이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계속 오늘을 포기해야 한다. 더 나은 결혼 생활을 위해서, 한국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내 집 마련을 위해서, 국가가 결코 보장해주지 않는 노후를 위해서 끊임없이 오늘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서 살아가다가 우리는 문뜩 깨달을 것이다. 100년도 안 되는 우리의 인생이 허망하게 가버렸다는 것. 내일을 위해서 행복한 삶,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며 살아 왔다는 것. 죽기 직전 우리가 포기했던 순간들을 사무치게 후회하진 않을까?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나‘를 희생하는 우리의 삶은 너무도 비극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소중한 오늘을 버려가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유는 사회 체제에 있다. 2009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사람들을 경쟁의 벼랑 끝으로 내몬다. 전쟁터에서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현대 소비 자본주의…
첫 째, 체제를 우리가 당장 바꿀 힘은 없어도 일단 믿을 필요는 없다. 즉, 이 체제가 강요하는 사회화과정을 개인적으로 이탈해버리면 막
은 이념이 아닌 생존의 논리에 지배받게 되었다. 대학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의 취업을 보장해 주는가에 대한 순위로 환산된다. 학문을 탐구해야할 대학이 직업 훈련소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자연스레 대학생들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펙 올리기에만 열중할 수밖에 없다. 스펙을 올린 젊은이들은 노동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사회는 노동의 유연화란 명목 하에 어느 누구의 일자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선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고,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시장이 원하는 상품이 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거나 미지각하여 타율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허무함을 느낀다. 잔혹한 시련을 거쳐 가면서 사회 체제에 흡수되어 상품이 되는 이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게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격이 아니냐, 생존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생존이냐 같은 질문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유한한 우리의 인생을 체제에 의해 강요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인간은 상품으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기를 열망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출세를 위해 공부 아닌 공부에 매달리는 것만큼 자신의 주위에서 그 어떤 대안적인 삶의 방식도 볼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신분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싫은데, 살기 위해서 “모두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비인간적인 경쟁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사회 체제에 맞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첫 째, 체제를 우리가 당장 바꿀 힘은 없어도 일단 믿을 필요는 없다. 즉, 이 체제가 강요하는 사회화과정을 개인적으로 이탈해버리면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