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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소개)
흑묘백묘론적 실용주의
지난 20세기 실용주의의 대표적인 영울을 꼽는다면 14억 대륙 중국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개혁 개방을 서슴지 않았던 덩샤오핑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산시 성에서 전해져운 고사이지만 이제는 중국의 옛말이 라기보다는 덩샤오핑이 한말로 더잘 알려진 ‘흑묘백묘는’ 그의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말이기도 하다.
1960년 초 중국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였다. 1958년에 마오쩌동등이 추진한 ‘대약진운동’이 사실상 실패 하였고, ‘인민공사’화 정책도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동은 1950년에 공산혁명을 일으켜 지주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돌려주었지만, 결국 집단 소유, 집단 생산체제인 인민공사 제도를 추진해 다시 회수하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거듭된 가뭄으로 인해 수많은 인민들이 기아 상태에 빠졌다. 과연 사회주의는 꿈에 불과한 것인가?
사회주의 신생 대국 중국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당시 중국은 혁명정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 당 지도부는 더욱 초조 할 수박에 없었다. 따라서 당 중앙에서는 이러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덩샤오핑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장하였다.
“현 상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 생산력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고정된 한 가지 생산관계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민들의 생산력을 향상 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생산관계라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인민공사만을 주장하는가? 생산 책임을 호별로 맡기는 것이든 조별로 맡기는 것이든 군중이 원한다면 그리고 생산력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를 채용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른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적 사상 이었다.
이는 실천과 실질을 추구하는 전략의 핵심이며 무엇보…
획과 시장은 모두 수단이지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생산력을 해방시키고 발전시켜 양극화를 막고 공동의 부를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불필요한 논쟁을 하지 말고 좌경적 폐해를 경계하며 발전해 나가야 한다. “
덩샤오핑의 이런 생각은 당시의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생각 이었으며 현중국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영어로는 ‘innovation’ 한국어로는 ‘혁신’ 이 단어는 정치나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방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중국에 비슷한 말로 대파대립이란 말이 있다. 이는 마오쩌둥의 즐겨 했던 말로써“크게 부숴야 크게 세울 수 있다” 는 의미이다.
마오쩌둥의 대파란 곧 계급투쟁이었고 왕조시대의 봉건주의를 대파하고 지주 계급, 지방군벌들을 대파하고 신 중국을 건국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 신 중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계급투쟁 방식을 끝까지 고집하여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는 등 그야말로 중국을 10년 동안이나 대파하였다. 그것은 곧 파괴적인 대파 즉 파괴적인 혁신이었다.
1978년 덩샤오핑이 집권하였을 당시 중국은 그동안의 잘못된 대파로 인해 백성은 멍들대로 멍들고 국가 경제 정치 교육 모든 영역이 총체적으로 붕괴된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에 그는 창조적 파괴로서 혁신을 일으킨다.
덩샤오핑은 우선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타도당한 국가의 핵심 관료와 핵심 관료와 지식인 대학생 과학기술 인재 등 국가를 일으킬 인재들을 복권 발굴하여 육성하고 재배치하는 인적 쇄신의 혁신을 시도 하였다.
첫 번째로는 사청운동 으로 인한 사건과 1957년의 반우파 투쟁 관련사건은 물론 심지어 해방 전과 건국 직후의 사건거지 모두 재평가 하여 이 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을 구제 하였다.
두 번째로는 개국공신 허룽 원수의 명례를 회복 시켜주었다 비록 그는 죽음을 당한지 5년 후지만 무덤에서 명예회복을 덩샤오핑을 통해 받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일어난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