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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역사는 어떻게 서술되는가?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 선택한 교양 과목 이였다. 당시 강의 계획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바탕으로 고대 한일 관계사를 한일 양국이 각각 어떤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풀어쓸 것인가를 봄으로써 역사가 어떻게 서술되는지, 왜 서로 상반된 의견을 취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는 것 이였다.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임나일본부설 이였고 더구나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공대에 다니고 있는 공학도에게는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흥미는 수업을 들으면서 더 가깝게 다가왔다. 중, 고등학생 시절 배웠던 역사(그것도 고1때 까지)가 그렇게도 짧은 지식 이였으며 내가 알고 있던 한, 일 관계는 실제 역사의 세 발의 피의 반의 반도 못 따라 가고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비록 이 강의 내용도 한, 일 양국의 관계에 관한 역사를 총 망라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마저도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000 교수님의 ‘역사는 어떻게 서술되는가?’ 의 강의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라는 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책이 먼저인지 교수님의 강의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2xxx년에 발간되었으므로 강의가 먼저인 것 같다.) 그 만큼 이 책과 강의 내용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이 책으로 중간고사를 공부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책의 시작은 임나일본부설의 용어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임나는 지리적으로 구야한국에 기원하는데 직접적으로 임나가야를 중심으로, 간접적으로는 신라, 백제를 지배했으며 그 지배기구로 설치 한 것이 임나일본부 이다’ 스에마쯔 야스까즈가 내린 고전적인 정의이다. 그…
가 탁순 에서부터 출발 했는데 왜에서 바다를 건너 왔다면 가야를 거쳐 가야 하는 탁순까지 무리하게 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백제의 작전 이였으며 왜가 증원군의 형태로 앞에 덧붙임으로써 완전히 야마토 정권의 가라 7국 평정으로 뒤바뀐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 있어서 목라근자가 백제의 장군 이라던지, 여러 가지 지리적인 모순들이 드러나면서 완벽한 위조가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 ‘목라근자의 가라 7국 평정’ 의 성격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뒤에 382년 ‘목라근자의 고령가야 구원’, ‘487년 임나 주둔 목군 유비기의 반란’, ‘6세기 전반 목군 윤귀의 임나 경영’, ‘562년 키노 오노마로의 임나 구원’ 등의 중요한 역사적 내용들의 성격은 그것의 토대가 되는 ‘369년 목라근자의 가라 7국 평정’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라 7국 평정의 주체가 백제라면 당연히 뒤에 임나 가야를 구원한 것도 백제여야 하고 반란이 일어나도 백제의 관리에 의해 일어나야 그 앞뒤가 맞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라 7국의 평정 주체가 왜, 즉 야마토 정권이라면 뒤에 일어났던(369년의 일을 전제로 한 모든 역사) 일들 또한 주체가 야마토 정권이여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것과 같이 가라 7국 평정은 주체가 백제이고 그 중심은 백제 장군 목라근자 임을 밝혔다. 따라서 그 뒤에 일어난 고령가야를 구원한 것도 주체가 백제이고, 반란은 일으킨 목군 유비기도 백제 사람이고 6세기 초 임나를 경영한 목군 윤귀도 백제 사람이고 562년 임나를 구원 한 주체도 백제임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백제의 임나 경영이 야마토 정권이 주체가 된 임나 경영이 되어버렸을까? 답은 목씨의 임나 경영에 있다. 앞서 본 내용에 따르면 임나가야에 대한 내용은 전부 목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 목라근자의 가라 7국 평정, 고령가야 구원부터 시작해, 목군 윤귀, 목군 유비기, 키노 오노마로(일본에서는 ‘기’ 씨도 ‘목’ 씨와 마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