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히브리, 이스라엘, 유다의 의미 >
(1) 히브리
히브리인(a Hebrew)은 ‘이브리(Ivree)’라는 말에서 나왔다.
아브라함과 그 자녀들에게 이브리(Ivree)라고 명명되었는데 여기에서 히브리(Hebrew)가 나왔다. ‘이브리(Ivree)’는 ‘강을 건너다, 옮겨 다니다’라는 의미로, 히브리인(a Hebrew)이란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 혹은 ‘옮겨온 사람들’을 말한다. 히브리인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면서도 초기에 방랑하던 유태인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2) 이스라엘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시절부터 ‘브 나이 이스라엘(b nai yisrael)’이란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자손’ 혹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란 뜻이다.
+ 원래 이스라엘이란 말은 ‘하느님과 씨름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속에서 사람인지 천사인지 자신의 형제인지 누군지 모르는 대상과 동이 트기 전까지 씨름을 한 후 깨어났는데 그 이튿날 그 대상이 “너는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왜냐하면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 냈고 또한 사람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창세기 32:28)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말이 나왔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과의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말해준다.
(3) 유다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하나인 유다(Judah)에서 유래되었다. 유대인이란 말은 유다사람이란 의미다. 분열왕국 시대 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왕국으로 나뉘어 존립하다가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유다왕국만이 남아 유태민족을 …
< 이스라엘의 역사 >
1. 성조시대
* 아브라함
* 이삭
* 야곱과 열 두 아들
2. 모세와 출애굽
3. 가나안 정착과 판관시대
4. 왕정시대
기근 때문에 이집트의 나일 강 하류로 이주하게 된다. 이집트에서 그들은 노예 생활을 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이집트에 정착한 후 40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많은 수로 불어났고, 새로 등극한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들을 탄압했다.
히브리인이면서, 이집트의 궁전에서 자란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조상들의 하느님 야훼를 만나 뵙고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자기 민족을 구할 사명을 받는다. 자신과 히브리 족이 떠나는 것을 반대하는 파라오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모세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다.
이집트를 탈출하고 사십 년간의 방황을 거쳐서야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갔다.
3. 가나안 정착과 판관시대
사십 년이 지나고 나서 하느님을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다. 가나안 정착 사업이 마무리되고, 광야에서 들어온 히브리인들과 가나안의 히브리인들 사이에 `세켐`에서 장엄한 계약의식을 맺게 된다.(여호수아 24장). 즉 야훼만을 숭배하기로 맹세하는 의식으로서 이때부터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된다. 태평세월이 계속되면서 광야에서의 시련과 고난을 잊어버리고 차츰 북부와 남부로 갈라져 단결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또한 본래 가나안은 바알과 아세라 등의 신을 숭배하던 지역이었는데 차츰 이교 신앙에 물들기 시작하여 도덕적 타락을 가져오게 된다. 이스라엘은 본래 열 두 지파로 나뉜 부족 동맹체제로 비상사태 시에만 부족이 힘을 모았고 이때 이들을 지도하던 자들을 판관이라 하였다. 판관은 소송사건의 해결 뿐 아니라 정치 군사 종교의 지도자 노릇을 하였으며 총 열 두 명의 판관이 있었다.
4. 왕정시대
판관시대가 끝난 이스라엘은 이제 왕정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판관시대가 부족 형 체제라고 한다면 왕정 시대는 중앙 집권 체제이다.
연대기로는 기원전 1030년경부터 586년으로 수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함락되고 최후의 임금 시드키야가 수많은 히브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