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스페인의 정치제도 변천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 내전의 배경과 영향
1. 스페인 내전이란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ola)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발발했던 전쟁이다. 전쟁은 1936년 7월 17일에 모로코에서 프랑코 장군(파시즘 진영)이 이끈 쿠데타로,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파시즘 진영)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 기간 중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2. 내전의 배경
1930년대는 이데올로기가 만발한 시대였다. 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세 이데올로기 투쟁이 이 시대 정치사의 기본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시대상은 스페인 내전에서도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들 중 하나였는데, 스페인은 당시 가톨릭교회와 군대의 귀족 장교집단, 절대왕정 등 쇠퇴하는 지배계급의 통치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런 독특...
본문/내용
스페인의 정치제도 변천을 중심으로 한 스페인 내전의 배경과 영향
1. 스페인 내전이란?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ola)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발발했던 전쟁이다. 전쟁은 1936년 7월 17일에 모로코에서 프랑코 장군(파시즘 진영)이 이끈 쿠데타로,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파시즘 진영)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 기간 중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2. 내전의 배경
1930년대는 이데올로기가 만발한 시대였다. 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라는 세 이데올로기 투쟁이 이 시대 정치사의 기본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시대상은 스페인 내전에서도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들 중 하나였는데, 스페인은 당시 가톨릭교회와 군대의 귀족 장교집단, 절대왕정 등 쇠퇴하는 지배계급의 통치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런 독특한 스페인의 사정이 내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기도 하지만, 세계 경제공황, 국제 파시즘의 대두, 국제 공산주의 운동 등의 여러 요인들도 내전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내전은…
은 토지개혁을 포함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이에 대해 스페인의 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이에 반대하는 교회 대지주 대자본의 지지를 얻은 군부 왕당파 우익 정당 진영은 마침내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프랑코 장군의 지휘 하에 모로코 주둔군을 선두로 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내전 발발 직후인 7월 20일 반란군의 사령관이었던 산후르호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다. 이로 인해 반란군 측의 지휘 체계는 양분되어 북방에서는 ‘에밀리오 몰라’가 남방에서는 ‘프랑코’가 지휘권을 갖게 되었다. 9월 5일 격렬한 전투 끝에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공화파 군대가 지키던 이룬이 반란군 측에 점령당했다. 9월 13일에는 바스크 지방의 주도 빌바오의 관문인 산 세바스티안이 반란군에게 항복했다. 공화국 정부군은 9월 말까지 비즈카야에서 저항했다.
9월 21일 살라망카에서 회합을 갖은 반란군은 프랑코를 총사령관으로 추대했다. 9월 27일 톨레도에서 벌어진 알사자르 공방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나자 전황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0월이 되자 프랑코의 반란군은 마드리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11월 6일 공화국 정부는 전투를 피해 발렌시아로 옮겨졌고 주요한 전투는 11월 8일에 시작되었다. 프랑코의 반란군은 11월 27일까지 3,000여 명의 국제 여단이 지키고 있는 마드리드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으나 함락에 실패했다. 프랑코는 전략을 바꿔 마드리드를 포위하여 고립시키고 전폭기를 동원하여 폭격했다. 마드리드는 그 후로도 2년 동안 고립된 채 반란군과 싸웠다.
그림 게르니카 - 파블로 피카소
1937년 1월과 2월에 걸쳐 프랑코는 마드리드를 함락하고자 공격하였으나 또 다시 실패했다. 2월 8일 말라가가 프랑코 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2월 21일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파시스트 측의 외국 병력 참전은 불법 교전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그러나 3월 7일 나치 독일은 의용군이라는 명목으로 콘도르 사단을 파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