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콜럼버스의 항해와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과정
1. 콜럼버스의 항해
- 1) 그는 누구인가?
- 2) 항해에 나선 이유?
- 3) 항해과정
- 4) 결과
2.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
- 1) 잉카문명의 멸망
- 2) 아즈텍문명의 멸망
1. 콜럼버스의 항해
- 1) 그는 누구인가?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Cristoforo Colombo)는 1451~1506에 살았으며, 에스퍄나 인은 아니며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태어난 평민이었다. 그는 1451년 8월과 10월 사이에 이탈리아 남서 해안의 항구 도시에서 도미니코 콜럼버스와 수산나 디 폰타나로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 부부에게는 두 아들 바르톨로메오와 지아코모가 있었는데, 이들은 형을 도와 같이 탐험을 했다. 콜럼버스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독실한 가톨릭 교도로 성장해 아버지의 직업인 양모 직공 일을 도왔다는 정도만 남아있다. 15세기 제노바는 조선업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주요 항구였기에, 이곳에서 자란 콜럼버스는 자연스럽게 바다를 보면서 소년의 꿈을 키웠고,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무역 거래를 눈으로 보면서 무역 항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대 이탈리아 상인들과 동방 상인들의 거래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한 그는 어릴 때부터 상인 밑에서 배를 탔다. 1476년에 포르투갈로 건너가 지도제작에 관한 공부를 햇다. 1480년부터 1482년 사이에 대서양의 카나리아제도와 아조레스제도를 항해했으며, 서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포르투갈의 요새도 방문했다.
그리고 1492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중국, 일본으로 가는 항로를 찾고자 했던 포르투갈인과 달리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
- 2) 항해를 나선 이유?
- 3) 항해과정
도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콜롬버스가 인도를 갈수있다고 믿게 만들었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토대로 계산했을때의 거리는 실제의 거리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9월 24일의 항해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육지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 데도 현재 나와 선원들의 관계는 심각한 상태다.”
10월 달이 되자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가자는 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콜럼버스는 말했다.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 내 머리를 잘라도 좋소. 그럼 여러분 모두 편안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요.” 콜럼버스는 이 항해에 목숨을 걸었다. 1492년 10월 12일 새벽에 드디어 육지가 보였다. 육지를 첫 발견한 사람은 핀타호에 타고 있던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였다. 그가 “육지가 보인다”라고 외친 순간은 세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그는 오랜 고생의 항해 끝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諸島)의 와틀링섬(추정)을 발견하였다. 이어,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콜롬버스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라고 생각을 하였고, 섬에 살던 사람들을 인도인(인디언)이라고 불렀다.
그리곤 히스파니올라에 39명의 선원을 남기고 작은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리곤 의기양양하게 몇 명의 인디언을 대리고 에스파냐로 돌아왔다.
2번째 항해에는 17척의 배와 1200명으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콜롬버스가 거짓말로 말한 금은보화를 찾으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시 도착한 히스파니올라엔 남겨두웠던 식민자 39명은 이미 반란으로 몰살을 당해있었다.
3번째 항해(1498∼1500)에서는 트리니다드와 오리노코 하구(河口)를 발견하였으나,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회 항해(1502∼1504)의 허가는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그 사정은 명백하지 않다.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