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독일 역사학파의 설립과 해체 과정, 그리고 역사학파들에 대하여
1.전기 역사학파
1-1 역사학파의 설립 배경
19세기 초, 독일은 30년 전쟁 이후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어 심각한 국력의 저하를 초래하였다. 정치적으로도 조건에 따라 제후는 스스로 외국과도 동맹할 권리가 인정되었으며, 제후의 독립성이 강화되어 신성로마 황제의 지위는 더욱 명목적 존재가 되었다. 공업은 영국으로부터 대량으로 들어온 공산품 때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었고, 구조 자체도 농업 국가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 권력의 주도로 유치산업 및 기간산업을 보호할 경제정책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여러 공국과 도시들로 분할되어 있었고, 독일의 반봉건적 지배 계급이었던 융커1)와 소부르주아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유 무역으로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지지하였다. 변혁을 위한 농민 내부의 역량도 미미한 수준이었으므로 위로부터의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슈타인-하르덴베르크의 개혁2)으로 어느 정도 농민 해방의 진전이 있었으나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기에, 독일의 산업 육성을 위해 정통 이론인 고전학파와는 다른 경제 이론과 사상이 필요하였다.
그 새로운 사상과 이론이 바로 프리드리히 리스트를 필두로 한 국민경제학이었고, 이것이 바로 역사학파의 시작이었다. 경제학의 시초인 아담스미스의 고전학파는 영국의 선진적인 국민경제에 관한 고찰의 결과로 얻어진 경제이론이었다. 역사학파는 이런 배경으로 설립된 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이 아무런 조건이나 수정 없이 후진 독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주…
1-2. 전기 역사학파의 특징
2.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전기 역사학파의 경제학자
2-1. 프리드리히 리스트
2-2. 전기 역사학파의 경제학자
만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개인-국가-세계라는 경제 단위에서 국가를 위한 경제학을 각국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서로 다른 국민적 경제 이론을 전개한 것이 국민경제학이다. 리스트의 저서인 “경제학의 국제적 체계”에서 “내가 제시하는 체계와 고전학파와의 특질적인 차이점은 국민국가를 들 수 있다. 개인과 인류와의 중간 항으로서의 국민국가의 본질 위에 나의 전건설은 기초를 두고 있다”라고 말한 점에서 그의 생각을 잘 엿볼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장소,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이고 타당한 경제학이라는 고전학파 종래의 개념에 대립하는 것이다.
리스트는 국가의 경제 발전 단계를 미개 상태, 목축 상태, 농업 상태, 농공업 상태, 농공상업 상태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국은 이미 농공상업 상태에 다다랐으며, 독일은 이제 겨우 농공업 상태일 뿐이기 때문에 영국의 자유무역론은 강대국의 이데올로기로 일축하였고, 보호 무역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리스트의 보호 무역주의는 위에서 말했듯이 사회는 유기적이므로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보호가 아니라 경제 발전 단계에 따른 필요로 주장한 것이었다. 리스트는 결국 미래에 모든 국가가 어느 정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연합을 결성하여 인류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할 수 있다면, 그때에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보호를 위한 관세장벽은 국내의 특정 자본가에게는 부를,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은 리스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품질에 비해 턱없이 비싼 국산 공산품을 사용해야하는 소비자의 고통은 머지않아 국민 전체의 국력 향상에 의해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에게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국민, 즉 ‘국민국가’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후진 독일의 상황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이데올로기였다.
2-2. 전기 역사학파의 경제학자
전기 역사학파는 고전학파의 추상적 방법에 반대하여 경제 문제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