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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가 수용한 희랍정교(Greek Orthodox Church)의 특성을 규명하시오.
러시아는 988년 희랍(그리스)정교를 국교화함으로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054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 정교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로마교회로 분열됨으로서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유럽과 상이한 문화를 갖게 되었는데...
그리스 정교회(正敎會, Greek Orthodox Church)란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로 이 이름은 보통 동방정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동방정교회라 부르기도 한다.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 Eastern Orthodoxy)는 사도교회를 계승했으며, 독특한 전례, 지역 교회들의 독자성 등을 특색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주요 3분파들 가운데 하나이다. 동방정교회는 처음 7차례 열린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정의된 신조와 관행을 따르는 그리스도교도들의 큰 단체이다. 동방정교회의 전례 문서 혹은 교회법 문서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명칭은 `정통 가톨릭 교회`(Orthodox Catholic Church)이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1054)은 AD 1세기에 시작되어 중세기 내내 계속 되었던 점진적인 소원화 과정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사건이었다. 이 소원화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 정치적 사건들에서 비롯되었다.
4~11세기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이던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으며, 로마는 야만족의 침입 이후 동로마의 정치적 라이벌인 서방의 신성 로마 제국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이 두 지역에서 교회의 권위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이 동시에 발전했고, 여기서 신학적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로마 교회가 …
러시아 혁명 이후 정교회 내부에서는 많은 혼란과 행정상의 갈등이 있었다. 특히 서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관할권이 중복 설정되었으며, 정치적인 의욕이 지나쳐 명시된 교회법적 규약이 없는 교회 조직들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 몇 가지 요인들(예를 들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로 인해 오늘날 정교회 안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했다. 그 결과 민족 문화와 종교의 일체화도 나타나게 되었다. 민족 문화와 종교의 일체화는 정치적 조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의 생존을 돕는 때도 있었으나, 선교의 확장을 방해하고 교인들의 그리스도교적 일체감을 가로막기도 했다.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가 분열한 때는 연대적으로 북유럽과 동유럽에서 선교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던 때와 일치한다.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는 다같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팽창에 기여했으나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서방 교회는 새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라틴어 전례를 따르도록 하여 라틴어를 그리스도교 문명의 유일한 매체가 되게 했고, 교회의 통일을 위한 주요수단으로 삼았다. 반면 동방 교회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성서와 전례를 개종한 민족의 모국어로 번역한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슬라브 민족들의 토착 문화와 통합되었고, 세계의 정교회는 중앙집중화한 기구라기보다는 민족 교회들의 친목단체로 발전했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서방 교회는 다른 어떤 개별적 기구가 수행할 수 없는 사회 통합 기능을 떠맡았다. 그 결과 교황들은 그리스도교 국가의 사회 생활을 지배하는 권위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되었다. 동방에서는 제국 체제가 1453년까지, 러시아에서는 1917년까지 유지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는 제국의 정치적 틀 안에서 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개념은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교회의 이해관계와 국가의 이해관계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와 제국이 모두 초자연적이고, 원칙적으로 우주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시기에 이 개념은 민족 국가에 신성한 지위를 부여하는 체제로 점차 발전했다. 오늘날 정교회 교회들 사이의 관계를 방해하는 현대의 교회 민족주의는 제국과 교회의 중세기적 동맹관계가 낳은 부산물이다.
교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