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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제 사 상 사
중 농 주 의
중농주의의 어원을 살펴보면 얼마나 역사적인 왜곡이 쉽게 일어나는가를 알 수 있다. 중농주의(Physiocracy)라는 단어에서 피지오스(Physios)는 자연이며, 크레테시스(Kratesis)는 통치이므로 어원상 중농주의는 ??자연적 통치??를 뜻한다. 그러므로 정확히 번역하면 자연주의 또는 자연법주의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농주의는 그 당시의 자연법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사상으로서 사회현상을 순리대로 풀어나가려는 정신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한 중농주의는 확고한 과학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즉, 그 이론체계나 방법론에 있어서 중농주의는 철두철미하게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인식의 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스미스가 냉소적으로 농업주의라고 불렀다. 그것을 일본사람들이 농업을 중요시했다고 하여 중농주의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중농주의는 단순히 농업만을 중요시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프랑스가 농업국가였고 국민총생산의 90% 이상이 농업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농업을 중요시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중농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중농주의 등장배경
중농주의는 주로 프랑스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다분히 프랑스 적인 배경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중상주의들의 원리가 상업자본시대의 영국의 경제상태를 반영한 것이라면 중농주의 이론은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경제, 사회상태를 반영한 것이었다. 때문에 먼저 중세 후기의 프랑스 공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루이 14세부터 프랑스에서는 중상주의 정책이 시작되었다. 재상 콜베르 치하에서 본격적으로 전개…
중농주의의 의의
중농주의의 학설
계급이라고 하였다. 튀르고는 순생산물이라는 발상을 중심으로 한 중농주의 체계를 원리로서는 받아들였지만 상공업자를 불임계급이라고 하는 것을 거부하고 현실에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농공상의 어느 분야에서도 자본가 기업가 하에서 이윤의 형성과 부의 축적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중농주의의 오랜 틀 속에 부르주아적인 경제학을 포함시킨다. 케네는 농업을 유일 생산적이라고 인정하였지만 농업의 노동을 생산적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이것에 반하여 튀르고는 노동 자체를 생산적이고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생각하였다. 1776년 튀르고는 재무부 장관으로서 길드의 해산, 부역의 폐지, 국내 무역의 자유 등을 선언하는 칙령 대개혁을 단행하였지만 특권층에 저지되어 실각하였다. 한편, 케네 직계의 중농주의자들은 케네의 저작집 『Physiocracy』(‘자연의 통치’, 1767)의 간행을 계기로 경제학의 적극적인 전개를 중지하고 토지소유를 사회조직의 근본원리로 보고 지주 우선 정치체계를 세웠다. 이 경직된 정치체계와 관념적인 자유 방임 정책 때문에 중농주의는 혁명 직전의 프랑스의 현실로부터 멀어져 갔다.
중농주의의 학설
중농주의는 단순히 경제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프랑스를 재정적 곤경에서 구하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그 해결을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또 그 이론에 입각한 정책인 것이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농업생산을 발전시켜야 하며 농업자본의 축적을 촉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농업에서 잉여가 커지면 상공업도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대농경영의 경제적 우위성을 역설하였고 중상주의적 통제나 불경제적인 조세제도의 폐지를 제창하였다. 그리고 자유방임의 정책을 실시하고 지주계급의 지대수입에 대해서만 과세할 것, 즉 토지단일세를 과하는 것이 국가의 부를 증가시키는 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농업만이 잉여생산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시 프랑스가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업생산에 관하여 자본주의 생산의 본질을 밝히고, 생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