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eport
(포스트 모던주의와 계몽주의의 개념 및 역사와 배경 조사분석)
포스터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중반에 자리잡은 말이다. 그 전에도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 용어가 신뢰를 얻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 시점부터였다. 먼저 포스터 모더니즘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간주되기에, 계몽주의부터 고찰해보고자 한다.
계몽주의는 1750년경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의 이 시기는 계몽주의라 불렸는데, 당시 그 지역의 기독교에 중대한여파를 미치게 되었다. 이 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인간 이성의 전능성을 단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따. 이성은 우리가 하나님과 도덕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초자연적 계시 같은 사상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며,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해 줄 수 있는 것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이성이 최고 지배권을 가졌다.
지금 서구 세계 전체에서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알려진 운동은 이성에 대한 이와 같은 확신이 붕괴되고, 소위 `근대` 세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면서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일어났다. 포스터모더니즘은 우선 계몽주의가(인간 이성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과 같은) 기만적인 지적 기반에 놓여 있으며, 그로 인해 역사에서 스탈린의 대숙청과 나치의 학살 수용소와 같은 가장 참흑한 사건들을 낳았음을 고발하는 지적 운동이다.
`계몽주의`와 근본적인 관심은 인간의 `특수성`을 벗겨 버리고, 인간 본성의 핵심을 적나라하게드러내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본성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비사회적인 도덕적 존재 라고 믿는다. 계몽주의 입장에서, `특수…
이제 계몽주의 가 복음주의 안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침투해 왔는지를 살펴보자.
릴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복음주의는 계몽주의 진영에 있는 많은 사람들조차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상과 방법에 더욱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다. 계몽주의와 복음주의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기원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계몽주의적 세계관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음과 같은 지역, 곧 18세기의 부흥과 갱신의 결과로 복음주의가 팽창하고 19세기에는 자신을 방어해야 했던 지역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문제다.
찰스 핫지와 같은 신학자들의 이론은 계몽주의적 전제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조지 마스덴이 지적한 것처럼, 프리스턴 신학은 "정상적이고 편견 없는 상식을 가진 사람은 동일한 사물들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만 하며, 기본적인 진리는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는 가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에 담겨 있는 확고한 합리주의적 어조는 특별히 벤자민 위필드의 저서들을 보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찰스 핫지의 초기 저작들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핫지의 연역적 성경 영감론을 날카롭게 분석한 컨로버트 트렘바스는 핫지의 신학이 `스코틀랜드 상식 철학`에 놀랄 정도로 의존했다는 점을 밝혔다. 아마 더 중요한 것은 `상식` 학파와 연관이 있는 언어 철학이 성경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핫지의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언어는 어떠한 중재도 필요 없이 인간 정신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이론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는 오늘날의 성경 독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상과 의도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핫지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은 그 신학적 출처가 의심스러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계몽주의로부터 빌려 온 것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핫지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언어의 성격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절대적인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계몽주의의 의제에서 파생된 것이며, 그 의제를 반영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