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eport
(을지문덕 생애, 그 당시 동북아의 정세, 수나라와 전쟁, 살수대첩 전략과 결과분석, 여수장우중문시 조사분석)
목 차
1. 머리말
2. 을지문덕의 생애
3. 그 당시 동북아의 정세
4. 수나라와 전쟁
(1) 1차 수나라 침입
(2) 2차 수나라 침입
5. 살수대첩
6. 살수대첩 결과
7. 여수장우중문시
8. 맺음말
1.머리말
어렸을 때 처음 역사 책을 접한 것이 고구려사이기 때문인지 유난히 고구려사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이번 삼국사기 레프트 제출에 있어서도 고구려의 인물에 대해 조사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물색하던 중 살수의 영웅인 을지문덕에 대해서 조사하게 되었다.
2.을지문덕의 생애
을지문덕은 6세기 중반에 태어나 7세기 초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역학적으로 생몰년이 567-629로 밝혀지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18세기 조선 시대에 쓰인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의하면, 그는 평양의 석다산(石多山)에서 태어났다고도 전한다. 그가 태어날 당시, 고구려는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이 잦았는데, 서쪽에서는 중국 북조의 왕조와 돌궐, 남쪽에서는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와 자주 전쟁을 치렀다. 특히 신라는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지금의 함경도 일부를 장악하는 등, 기존의 삼국 질서를 바꾸어 놓았다.
3. 그 당시 동북아의 정세
을지문덕이 살았던 시대는 고구려 제25대 영양왕(?陽王) 때였다. 평원왕의 맏아들로 평양왕(平陽王)이라고도 부른 영양왕은 565년(평원왕 7년) 태자로 세워지고, 590년에 즉위하여 29년간 나라를 다스…
4.수나라와 전쟁
(1) 1차 수나라의 침입
절인 10여 년 전, 고구려에 한판 진 경험을 가진 양제는 이제 주변 나라와의 외교전에서도 밀리는가 싶었다. 이를 역사학에서는 고구려의 초원 정치라 부른다. 양제가 고구려와 국운을 건 전쟁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은 이 초원의 장막에서 이루어졌다. 영양왕은 신라와 백제에 대해서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두 나라는 수나라와 가까이 지내며 고구려를 견제하려 했다. 그러자 고구려는 영양왕 14년(603년)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했고, 18년(607년)에는 백제의 송산성을 공격했다. 신라의 진평왕이 다급한 목소리로 수나라에 군사를 청한 것이 608년이었다. 드디어 612년 곧 영양왕 23년 여름에 수나라의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되었다. [삼국사기]는 이때의 수나라 병력이 1백13만 3천8백 명이라 적고 있다. 물경 2백만 명 대군이었다.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양제는 시시콜콜히 그의 조서에서 밝혔다. 첫째, 고구려는 보잘것없는 나라이고 공손하지 않다. 둘째, 수나라의 말을 듣지 않고 조회에 참가하지도 않는다. 셋째, 고구려가 수나라에서 도망간 역도들을 받아들였고 변경을 괴롭혀 치안이 불안하다. 넷째, 요서를 공격하였다. 다섯째, 다른 나라들이 수나라에 조공 드는 것을 방해한다. 여섯째, 고구려의 법령이 가혹하고 지도자는 부패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이라고는 하나 사실 이는 고구려가 독립국임을 수나라에서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400년 혼란의 역사를 종식한 제국 수나라가 2백만의 군대를 동원해 벌이는 전쟁. 그것은 수나라가 고구려를 얼마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었는지 반증한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우리의 영웅 을지문덕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4.수나라와 전쟁
(1) 1차 수나라의 침입
598년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다. 수나라는 진을 멸망시키고, 장성 이북의 동, 서돌궐과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영토를 염탐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지형을 알아보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