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Report
(유로화, 도입, 문제, 향후 대책, 문제점, 특징, 변화, 현황, 관리, 역할, 기법, 시사점, 나의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1. 유로화(EURO)
2. 유로화 도입
3. 유로화문제
4. 향후 유로화에 대한 대책
1. 유로화(EURO)
유럽연합(EU) 단일통화의 명칭은 지난 1979년 이후 에쿠(ECU)를 써왔으나 독일의 테오 바이겔재무장관이 유럽을 뜻하는 `유로(EURO)`로 쓸 것을 제안하여 1995년 12월 마드리드 정상회담때 최종 확정됐다. 1999년 단일통화가 정식으로 도입되어, 유로화는 국가별로 발행하여, 주화의 경우 한쪽 면이 `국가면`이 되고 다른 쪽 면이 `유럽면`이 되는 식으로 유럽면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1999년 1월 1일 이후 유럽경제통화동맹 (EMU: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이 공...
본문/내용
Report
(유로화, 도입, 문제, 향후 대책, 문제점, 특징, 변화, 현황, 관리, 역할, 기법, 시사점, 나의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목 차
1. 유로화(EURO)
2. 유로화 도입
3. 유로화문제
4. 향후 유로화에 대한 대책
1. 유로화(EURO)
유럽연합(EU) 단일통화의 명칭은 지난 1979년 이후 에쿠(ECU)를 써왔으나 독일의 테오 바이겔재무장관이 유럽을 뜻하는 "유로(EURO)"로 쓸 것을 제안하여 1995년 12월 마드리드 정상회담때 최종 확정됐다. 1999년 단일통화가 정식으로 도입되어, 유로화는 국가별로 발행하여, 주화의 경우 한쪽 면이 `국가면`이 되고 다른 쪽 면이 `유럽면`이 되는 식으로 유럽면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1999년 1월 1일 이후 유럽경제통화동맹 (EMU: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이 공식출범함과 동시에 EMU 참가국들은 Euro 화를 자국의 통화로 사용하였다. Euro는 1999년 초부터 2001년 말까지 실체가 없는 문서상의 통화로 정부간 거래 및 금융기관간 결재통화로 사용되다가, 2002년 1월부터 6월까지 지폐와 주화의 형태로 각국의 통화와 함께 통용되어지나, 2002년 7월부…
단일 통화의 물꼬가 콜과 미테랑의 빅딜로 트였다.
프랑수아 미테랑(왼쪽)과 헬무트 콜
3. 유로화문제
너무 빠르게 수문이 개방된 것일까. 바로 이듬해 단일 통화 실험은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검은 수요일’(92년 9월 16일)이다.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등이 파운드화를 투매해 영국을 굴복시킨 사건이다.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서 이탈했다.
ERM은 단일 통화로 가는 중간 단계였다. 회원국 간 환율변동을 2.25% 안에서 억제한다는 약속이 핵심이었다. 영국만이 ERM에서 이탈한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등이 줄줄이 환율변동 억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경제 논리로 보면 ERM은 부실한 시스템이었다. 회원국 간 실물경제력의 차이 때문에 빚어진 돈 가치 차이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만으로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 회원국이 환율변동을 약속한 범위 안에서 유지하기 위해 통화가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재정적자를 줄이려 하면 실물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노먼 전 영국 고용부 장관이 “ERM은 사실상 ‘영원한 침체 메커니즘(Eternal Recession Mechanism)’”이라고 조롱할 정도였다.
영국 금융통화 전문가였던 고(故) 글린 데이비스는 『화폐의 역사』에서 “ERM의 약점은 나중에 탄생할 유로화에 고스란히 유전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요즘 유로존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를 단일 통화인 유로화로 덮으려다 결국 벌어진 사달이 바로 재정위기다.
92년 독일 콜 총리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다시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돌파했다. 환율 변동폭을 15%로 넓혔다. 그 덕분에 각국은 경제와 금융정책을 좀 더 유연하게 펼칠 수 있었다. 환 투기 세력과의 싸움에서도 여유로워졌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를 좁히려는 통화가치가 크게 벌어져 나중에 유로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때까지 정치적 타협은 그나마 이해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유로화 지폐와 동전이 유통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