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Report
(식민지 수탈론, 역사, 근대화론, 농업부문의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 반박, 유래, 특징, 현황, 사례, 관리, 역할, 기법, 시사점, 나의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1. 식민지 수탈론
2. 식민지 근대화론
3. 농업부분의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박
4. 농업부분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의 반박
5. 결론
1. 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수탈론에서는 조선사회의 주체성과 역동성을 주목한다. 즉, 조선사회는 일제의 도움이 없이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자본주의 맹아 단계였으며, 정체된 사회가 아님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후기의 상황이 일제의 개입으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자주적인 근대화는 이루지 못하며, 종속적이고 타의적인 근대화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이것은 경제 발전적이고 인간해방적인 근대화가 아닌, 경제적인 착취와 식민국과 본국간의 관계에서...
본문/내용
Report
(식민지 수탈론, 역사, 근대화론, 농업부문의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 반박, 유래, 특징, 현황, 사례, 관리, 역할, 기법, 시사점, 나의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목 차
1. 식민지 수탈론
2. 식민지 근대화론
3. 농업부분의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박
4. 농업부분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수탈론의 반박
5. 결론
1. 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수탈론에서는 조선사회의 주체성과 역동성을 주목한다. 즉, 조선사회는 일제의 도움이 없이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자본주의 맹아 단계였으며, 정체된 사회가 아님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선후기의 상황이 일제의 개입으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자주적인 근대화는 이루지 못하며, 종속적이고 타의적인 근대화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이것은 경제 발전적이고 인간해방적인 근대화가 아닌, 경제적인 착취와 식민국과 본국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차별과 굴종을 위한 근대화로서 본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식민지 근대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일제의 지배는 한국사회를 정치적으로도 분단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수탈론의 반박
(주장)
1). 토지조사사업을 근대적 토지소유개념 도입
2). 산미증식계획을 통한 경지면적의 증가
3). 농업기술개발을 통한 수확량 증가
(반박)
1).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근대적 토지소유개념의 도입은 토지에 대한 효과적인 수탈을 위함이었다. 토지의 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함으로써 개인 간 토지매매를 원활하게 하여 소수의 자작농, 자소작농의 토지를 손쉽게 빼앗을 수 있었다. 또한 근대적 조세제도의 도입으로 식민지로부터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조세를 걷어들일 수 있었다.
<그림 >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경지면적
2). 그래프를 참고하면 1910년부터 1918년까지 급격한 경지면적의 증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산미증식계획은 1918년부터 시행되었다. 따라서 경지면적의 증가는 기존에 숨겨져있던 조선의 경지를 찾은 것일 뿐이다. 또한 1910년대에는 본격적인 토지개량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개간과 간천에 의한 경제 면적의 증대 가능성은 한층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즉 개간이나 간척이 아닌 구한말 이래로 내려오던 경지를 조사를 통해 수치화한 것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1)
3). 농업부문의 직, 간접적 개발을 통한 수확량의 증가는 일본의 공업화 의지와 대륙침략에 대한 야욕이 바탕에 있다. 일본 내 공업화를 이루고 만주, 중국 본토를 침략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식량수급이 절실했는데 이러한 문제를 조선의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킴으로 해결하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개발의 중심축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비옥한 토지의 축적과 생산량의 증가는 외형적인 개발에도 불구 민족 간의 농업생산액의 차이는 확대되고 조선인 농민의 경제적 처지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민족 간의 농업생산액의 차이만 확대되고 인구증가에 따른 1인당 소득은 크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산미증식계획 등의 농업개발 정책으로 인해 농업생산의 증가는 이루었지만 많은 조선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하고 소작농 또는 임금노동자로 재편되어 노동에 의해 생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