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eport
(식민주의 시기 한국 가족법의 부계 계승제도의 특징, 역사 ,유래, 관습, 일본의 가계 계승 논리, 변화, 특징, 현황, 관리, 역할, 시사점, 나의견해 조사분석)
◆ 식민지 가족법의 의미와 전통문제
? 식민지 시기 가족법은 한국 가족법의 “전통”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 한국 가족법 개정운동의 역사에서 개정공방 때마다 내세워진 개정 반대 명분은 바로 “전통” 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통” 주장론자들은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 우리 가족의 전통이 언급 될 때, 그 실제 내용이 명시적으로 표현된 적이 별로 없었다.
☞ 대부분의 가족에 대한 전통 담론들은 제사, 호주제와 같은 부계 계승제도에 수반하는 각종제도나 이념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바로 이러한 전통담론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차원의 접근은 전혀 시도 되지 않았다.
☞ 전통문제는 여성주의적 분석이 역사적 분석과 병행 되어야 한다.
? 가족법 개정운동 역사에서 전통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그에 대해 반대하는 진보론자들 조차 강력한 비판을 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통문제의 중요성이 더해진다.
? 전통을 논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는 전통을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깔려있으며, 전통에 대한 대안으로 인간존엄과 남녀평등이 제시 되었다.
? 식민지 가족법은 조선시대의 가족제도가 식민지 국가에 의해 도입된 법적 질서 속으로 전유되고 보편화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러한 과정이 식민지 지배 권력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이다.
? 식민지시기에 일제의 의해 확립된 “조센의 관습”은 탈 식민 이후에 한국 가족법의 판례 및 법조문의 해석에 기초자료가 되었다.
☞ 즉 우리관습에 대한 오늘날의 지식수준이 식민지 시기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 여성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
호적이 작성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 일종의 인구조사 방식과 동일
? 1915년 민적법 개정과 함께 이전의 인구조사 방식이 폐지되고 일본의 추상적인 “가” (家,이에) 개념이 조선에 이식되었다.
☞ 추상적인 “가(家)” 는 사실적 거주상태와 상관없이 호주를 중심으로 조직된 호적문서에 기록된 가족을 의미
? 이후 1922년 발효된 조선 호적령은 기존의 민적법을 대체하고 호적제도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 가족에서 일어난 모든 변동을 호적관계 사무소에 보고하고 호적에 등록해야 함.
? 등록주의 원칙과 결합된 호적제도의 강화는 식민지 조선의 국민에 대한 통제력 증진을 위한 목적이었다.
? 이러한 호적제도의 근간에는 일본의 메이지시기에 고안된 “이에제도” 가 있다.
? 메이지 제국주의 국가는 그 자체가 천황을 시조로 하는 가족모형을 가진 “가족국가” 였으므로 “이에”의 고안은 정치적으로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 이에제도의 호주는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책임자며 동시에 가족을 대표하는 남성 성인으로서 국가와 교류 가능한 시민의 지위를 획득했다.
☞ 이에 제도는 핵가족의 외양과 직계가족의 원리를 통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음.
◆ 일본의 이에 논리와 조선의 가계계승 논리의 병합
? 이에 제도의 핵심인 호주의 지위를 조선의 가계계승자의 개념에 일제가 대입함으로써 두 제도간의 상호 작용이 일어났다.
☞ 조선의 가족제도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일본의 것과 뒤섞여졌음.
? 일제 시기의 각종문서에 보면 일제는 조선의 가족제도에 있던, 종자(宗子), 종손(宗孫), 승중(承重) 이라는 지위를 호주라는 지위의 관점과 비교하며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위 둘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조선의 가족대표 (종자, 종손, 승중)
호주
권위의 원천
조상집단
국가승인 서류상 지위
권위의 대표
조상으로부터 하향; 후손으로서 친척집단 대표
호적상의 지위를 기반으로 동시대 가족을 대표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