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Report
(세종시대 과학의 특징과 배경조사 및 미래의 과학기술을 향한 배울점 및 지혜 조사분석)
1. 들어가며
2. 세종 시대의 과학
3.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과 배경
4. 결 론
1. 서 론
세종하면 누구나 먼저 떠 올리는 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난 과학기술상의 업적으로 기념될 만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의 재위 기간(1418-1450) 만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기가 없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천문학은 당시의 중국이나 아랍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천문역산학 말고도 당시의 과학기술의 두드러진 업적으로는 활자 인쇄, 화기, 농업, 의약 분야의 기술이 크게 발달했고, 도량형과 음악의 과학적 정리가 크게 진전됐다.
그런데 세종시대 때 그렇게 발달했던 과학기술이 그후에는 왜 별로...
본문/내용
Report
(세종시대 과학의 특징과 배경조사 및 미래의 과학기술을 향한 배울점 및 지혜 조사분석)
목 차
1. 들어가며
2. 세종 시대의 과학
3. 세종 시대 과학의 특징과 배경
4. 결 론
1. 서 론
세종하면 누구나 먼저 떠 올리는 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난 과학기술상의 업적으로 기념될 만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의 재위 기간(1418-1450) 만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기가 없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천문학은 당시의 중국이나 아랍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천문역산학 말고도 당시의 과학기술의 두드러진 업적으로는 활자 인쇄, 화기, 농업, 의약 분야의 기술이 크게 발달했고, 도량형과 음악의 과학적 정리가 크게 진전됐다.
그런데 세종시대 때 그렇게 발달했던 과학기술이 그후에는 왜 별로 명성을 떨치지 못했을까. 17세기 이후에는 서양 과학과 기술 앞에 그야말로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서양에 압도당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 …
의 기상현상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이런 천문 및 기상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 할 수 없었으니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왕의 심복만이 할 수 있었고 왕이 제사장을 겸할 때는 신의 뜻을 헤아려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사람들의 죄를 고하며 제물을 바치기도 하였다. 때문에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미래와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성가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아무나 천문을 공부할 수도 없었고 천문은 왕실의 기밀사항이었다. 주몽에 나오는 삼족오도 동북아시아의 신화에서 태양 속에 산다는 태양조를 의미한다. 때문에 왕인 주몽을 상징하는 새로 태양조인 삼족오를 쓰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달력도 개인이나 과학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교황이나 중국의 황제만이 만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명나라나 청나라의 달력을 구해다 썼고. 서양에서도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나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달력을 만들었었다. 세종 시대의 천문학은 천체를 관측하는 기기를 제작하고 관측시설과 제도를 완비하며, 자주적 역법체계를 확립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업적이 이루어졌다.
1) 간의
해시계·물시계·혼천의(渾天儀:천문시계)와 함께 조선의 천문대에 설치한 가장 중요한 관측기기로, 오늘날의 각도기(角度器)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1437년(세종19)에 완성된 간의제도는 《원사(元史)》에 나타난 ‘곽수경법(郭守敬法)’에 의하여 대간의와 소간의를 만들었는데, 소간의는 대간의를 휴대용으로 축소해서 정동(精銅)으로 다리[趺]를 만들고, 그 둘레에 수거(水渠: 일종의 도랑)를 파서 자오(子午)에 준하여 수평을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적도환(赤道環)은 주천(周天: 공전)을 365도 1/4로 나누어 동서로 운전하면서 칠정(七政: 일 ·월과 수 ·화 ·금 ·목 ·토의 5행성) 중 외관입수(外官入宿)의 도분(度分)을 재며, 12시(時) 100각(刻)으로 나눈 백각환(百刻環)은 적도환 안에 있는데, 그것으로 일구(日晷: 시각)를 알고, 밤에는 중성(中星: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 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