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차례
Report
(세종대왕의 과학기술 업적의 특징 및 사례들과 나의생각 조사분석)
세종대왕과 과학기술
세종대왕시대의 과학은 이슬람 과학과 서유럽 근대과학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메워주는 동아시아 과학의 업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상운 박사(전 성신여대 총장, 동아시아과학사)는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세종 임금’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종시대 과학기술이 15세기에 이루어진 다른 모든 나라의 성과를 능가한다”면서 “세종시대의 과학이 세계 학계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1983년 일본에서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의 주요 업적으로 한국(Korea) 29건, 중국(China) 5건, 일본(Japan) 0건,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 28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제시했다. 전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9일 서울의대 함춘...
본문/내용
Report
(세종대왕의 과학기술 업적의 특징 및 사례들과 나의생각 조사분석)
세종대왕과 과학기술
세종대왕시대의 과학은 이슬람 과학과 서유럽 근대과학 사이의 역사적 공백을 메워주는 동아시아 과학의 업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상운 박사(전 성신여대 총장, 동아시아과학사)는 ‘15세기 과학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세종 임금’이라는 논문을 통해 “세종시대 과학기술이 15세기에 이루어진 다른 모든 나라의 성과를 능가한다”면서 “세종시대의 과학이 세계 학계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1983년 일본에서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의 주요 업적으로 한국(Korea) 29건, 중국(China) 5건, 일본(Japan) 0건,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 28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제시했다. 전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9일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한국과학사학회(회장 황상익 서울대 교수)가 주최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물-세종대왕’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1446년 훈민정음(한글)을 창제, 반포해 한민족의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훌…
,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생필품, 전자제품 등 또한 과학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식생활과 과학은 그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나라의 농경지 면적과 인구수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소비해야 하는 식량을 제한된 농경지에서 모두 생산할 수 있게 만든 배경에는 농사에 관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다. 과거보다 더욱 집약된 생산력, 즉 같은 면적의 토지에서 예전 생산량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끔 발전하는 그 원동력이 과학기술인 것이다.
그럼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농경에 대한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달했을까. 당시 국가경영에 있어서 가장 큰 당면과제는 기근해결이었다. 현재보다 농경지의 면적도 빈약하고 지금과 같은 시설과 집약도가 없는 과거의 상황에서, 누구보다 농사기술을 발전시켜 기근을 해결하도록 노력한 왕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어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서 기근문제에 접근하였을까.
세종대왕시기의 농사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시비법의 발달과 농사직설의 편찬이 그것이다. 시비법은 12세기말 고려시대에 도입된 농사기술로 지력을 보강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농사를 한 번 지으면 그 다음 해에는 그 땅에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1년간 휴경을 해야 했다. 그만큼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토양에 함유된 여러 요소들이 농작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2년에 한 번씩 농사를 지었는데 이는 기근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시비법이 도입되면서 휴경을 하지 않고 매년 농사를 짓게 되면 상식적으로 두 배의 생산량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시비법은 국한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다. 세종대왕은 이 시비법을 전국에서 시행하도록 하여 휴경지가 없는 농경문화를 조성했다. 이는 식량 생산량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의 농사기술 업적은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을 살린 농사법의 정리에 있다. 바로 농사직설의 편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