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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백범 김구의 리더쉽과 성공요인 조사분석
)
<백범 김구>
저는 이번 리더십 연구 인물로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선정하였습니다. 일제 식민지 하의 암울했던 시절 갈곳을 잃고 헤메던 백성들에게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자신의 지성과 감성을 총동원하여 백성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냈던 그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대표인물로 손꼽힙니다. 서번트 리더십 이란 가장 낮은 위치로 자신을 귀속시키는 겸손함을 바탕으로 조직의 가치를 지켜내면서 궁극적으로 조직을 리드하는 철학을 가르킵니다.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 주며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였던 지도자 백범 김구에 대해 지금부터 하나하나 알아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진 <백범 김구>
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 8월 29일(음 7월 11일)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아버지 김순영, 어머니 곽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창암’이었지만 1911년 황해도, 평안도 일대의 애국자가 일본인들에 의해 모두 잡혀 온 ‘안악 사건’ 이후 감옥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먼저 일제의 호적에서 떠난다는 뜻으로 이름을 ‘구(九)’로 바꾸고 호를 백범이라 하였습니다. 백범에서 ‘백(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게 여겼던 계층인 가축잡는 백정의 ‘백(白)’자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의‘범(凡)’자를 합친것으로 가장 낮은 사람을 뜻합니다.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사람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 겨레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한 자신만 하기를 마음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일본 군함 ‘운요호사건’ 이듬해로, 일본의 강압적 위협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게 되는,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계기가 된 강화도(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된 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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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신종교입니다. 동학에 입도후 그는 이름도 ‘창수’라고 바꾸고 동학교리를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활발히 포교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때 수 백명의 사람을 동학에 믿도록 한 공을 인정 받아 18세의 어린 나이로 한 지역을 책임지는 접주가 되었고 당시 나이가 어리다하여‘애기접주’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습니다. 1894년 9월 황해도에서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였지만 제대로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터라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후퇴하게 되었고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신 안태훈 진사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또우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와 알게 되었으며 인생의 참 스승을 만나게 됩니다. 안태훈 진사의 부인과 본관이 같아 그 연으로 그곳에 머물고 있던 조선 후기 성리학자 중의 한 명이었던‘고능선’선생님을 만나 학문도 배우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침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해에는 일본의 암살자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우리 나라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상투를 잘라야 한다는 단발령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분개한 그는 중국에 건너가 의병에 참가하였고 1896년 중국인 친구를 만나 새로운 계획을 새우기 위해 중국으로 가는 도중 ‘치하포’라는 나루터에서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군 중위를 처단합니다. 그리고는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내가 이놈을 죽였노라. 해주 텃골 김창수’라고 글을 쓴뒤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도망하라고 하였지만 왜놈이 궁궐에서 왕비를 죽였으며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아야 힘을 합해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후 그는 인천 감옥으로 잡혀가 고문과 조사를 받게 되었고 결국 사형이라는 형벌이 결정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서양 문물에 관한 여러가지 책을 읽게 되고 우리것만 고집하는 것보다는 서양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