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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박원순 서울시장의 생애, 업적, 배경, 추진한 사업들, 특징, 이 시대의 교훈, 시사점, 나의 견해, 느낀점 총체적 조사분석)
목 차
1. 선정이유
2. 인물정보
3.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4.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였던 사업들
5. 느낀점
1. 선정이유
저는 지난 11월 28일 토요일, 을지로 SK T-타워에서 열린 ‘제 1회 대학생 프로보노 포럼’에 참여하였습니다. 여려 유명하신 분들이 나오셔서 ‘프로보노’가 무엇인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이라면 어떠한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지 등 좋은 이야기도 해주시고 참여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박원순’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이 맡으셨던 ‘1993년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해오였던 여러 업적과 지금 하시고 있는 사회적 활동, 사회적 기업 활동을 보니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우선 이분이 남자이기 때문에 허스토리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민사소송사건을 담당하여 여성의 인권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허스토리의 모습을 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을 통한 사회 활동을 하면서 남녀를 벗어나 세상의 모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아워스토리의 모습도 포함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번 레포트의 주인공으로 ‘박원순’변호사를 선정하였습니다.
2. 인물정보
그가 거쳐 온 직업은 사법시험 합격 후 지방 등기소장에서 인권변호사, 정치개혁을 주도한 시민단체 간부, ‘나눔 전도사’를 거쳐 ‘사회 설계사’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박원순 변호사>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변신’의 연속이었고, 그의 끝없는 변신은 ‘…
3.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단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2000년에는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낙선운동을 이끌며 시민운동을 한 단계 도약시켜 ‘비즈니스위크’의 ‘아시아의 스타 5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제도개혁에 앞장서던 박원순 변호사는 2002년에 ‘나눔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의식개혁론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외국에서 보았던 기부문화를 국내에도 소개하고 싶어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참가할 수 있는 기부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1% 나눔’운동이 탄생했고, 쓰던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2006년 박원순 변호사는 또 다른 변화를 구상하였습니다. 3월 창립을 목표로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정리하고 실제 지방행정에 적용할 수 있는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연구소 ‘희망제작소’ 준비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이 박원순 변호사는 사회를 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싶은 모든 일에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3.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1992년 5월 29일부터 서울대 화학과에 기기담당 조교는 첫 출근 이후 지속적으로 신교수로부터 업무상 불필요한 고의적 신체접촉을 당했습니다. 담당조교는 신체접촉을 모면하게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며, 불쾌감과 거부의 의사표시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교수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성희롱을 하였고 1993년 6월 담당조교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게 되었습니다.
담당조교는 이러한 부당한 조처에 대해 해결을 바라는 진정서를 대학에 보냈으나 서울대학교 당국은 진상조사는커녕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결국 1993년 8월 억울함을 알리는 대자보를 본 총학생회와 대학원 자치협의회, 여성문제 동아리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결성하
였고, 진상조사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민사소송사건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우 조교의 변호는 박원순 변호사가 맡았습니다. 판결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994년 4월 18일 서울민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