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남북분단의 경제적 영향
귀속재산의 범위와 미군정의 정책
귀속재산 불하
농지개혁
8.15 당시의 공업상태는? 공산액 전체규모는 비슷. 그렇지만 경공업은 南, 중공업은 北
기계공업의 대부분은 토목기계, 농기구의 제작과 수송기관 유지, 광산개발용 또는 화학공업용 간이기계기구 제작 및 보수에 불과
전력의 경우, 출력면에서 南 14%, 北 86%
공산액의 남북비교 ? ☞
공업의 위축
“일-조선-만주 블록체제로부터의 이탈 + 남북분할”로 인해,
- 1946년 11월 현재, 사업장 휴업원인 중 원료부족 70%, 기계부족 9%, 자본부족 5%
- 1949년, 원료 38.7%, 전력 16%, 자금 13.6%의 순
주요 요인은?
식민지공업화의 귀결: 자본과 원료, 특히 기술면(기술자는 대개 일본인)에서의 대일의존
남북경제의 분단: 상호보완성이 박탈당함
1945년-49년 3월말까지는, 私貿易의 형태로 남북간 경제교역이 진행됨
- 대북반출품은 생고무, 광목, 양철, 면사, 작업화, 전구
- 대북반입품은 비료, 카바이트, 시멘트, 명태, 가성소다
전력공급의 문제: 미소공동위원회 결렬과 단독정부 수립에 따라 48년 5월 송전중단
? 단전 직후 생산액이 75%나 감소
? 1948-53년의 시기 설정문제? 정치적, 경제적?
미군정의 경제정책 평가(?)
① 일본인들의 기계 및 원료 방매를 저지하지 못함
② 일본인 기술자의 잔류 및 공장가동에의 활용 못함.
- 1948년까지 남한에 남아 있던 기술자는 10명 뿐(수산시험장, 방직공장)
③ 귀속공장 운영에 있어 미군정은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을 부정하고 관리인 임명
- 노동쟁의 발생으로 공업생산 타격. 관리인의 부정 만연?
④ 미국은, 조선공업의 재건보다는, 혁명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안정 노력
생산위축 실상 파악에 주의 필요
- WWII 말기부터 나타난 공업 위축의 연장?
- 통계의 불확실성(군정당국 시인)
공업생산의 회복
19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