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Report
(5·18 광주 민주항쟁의 ,민주화운동, 민주화 항쟁, 발생배경, 계기, 전개과정, 역사, 성격, 의의, 나의소감, 느낀점 조사분석)
목 차
1. 발생배경
2. 전개과정
3. 5.18 의 성격
4. 항쟁의 의의
5. 결론
1. 발생배경
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2. 전개과정
광주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은 다섯 국면으로 구분된다.
제…
매일 범시민궐기대회를 열어 투쟁목표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때 구성된 수습대책위원회가 광주시민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원상복구와 사태회복에만 주력함으로써 수습대책위원회와 광주시민 사이에 분열이 야기되었다.
이에 시민들은 범시민궐기대회를 통해 수습대책위원회를 규탄하고 25일 새로운 투쟁지도부를 구성했다. 동시에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비해 시민군을 체계적으로 조직했다.
그러나 27일 새벽 0시를 기해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탱크 등으로 무장한 계엄군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으로 10일간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일단락되었다.
3. 5.18 의 성격
5.18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를 지칭하는 ‘5.18 민주화운동’, ‘5.18 시민항쟁’, ‘5.18 민중항쟁’, ‘광주무장봉기’, ‘5.18 민중혁명’등의 명칭이 시사하듯이 민주화운동, 시민항쟁, 민중항쟁, 무장봉기 등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어왔다. 이같은 명칭과 성격 규정에 대한 입장 차이는 모든 사회과학적 개념들이 그러하듯이 일정한 ‘이데올로기성’과 가치관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우성 정부의 공식입장인 ‘민주화운동론’ 그리고 ‘시민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입장인 ‘시민항쟁론’은 두 가지의 이론적 근거에 기초해 있다. 하나는 5.18을 비롯한 한국정치 일반을 ‘계급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자유주의적’ 입장으로서 5.18을 ‘민중항쟁’으로 보는 것은 편협하고 ‘교조주의적’인 계급론에 현실을 꿰어 맞추어보는 시각이며 5.18은 민주화를 위한 전 시민적 항쟁이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지역모순’을 강조하는 일부 호남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입장으로서 5.18은 당시 그간의 지역차별 등에서 연유한 ‘지역모순’이 ‘계급모순’을 압도함으로써 계급적 차별을 넘어선 광주시민의 단결된 투쟁이 이루어진 ‘시민항쟁’이었다는 주장이다.
5.18의 성격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를 국가-시민사회라는 문제의식 틀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