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50년대 경제정책, 산업정책, 정책, 개발계획, 배경, 역사, 결과, 역사적 평가, 내용, 역사, 유래, 특징, 현황, 사례, 시사점, 조사분석
1. 귀속기업체 불하와 원조
귀속기업체 불하와 대기업의 형성
원조와 수입대체공업화정책
- 외환배정
- 재정투융자
2. 1950년대의 산업정책
수출지원체제
수입제한정책
수입대체를 위한 금융지원
3. 1950년대 산업정책의 의의
수입대체공업화의 진전
렌트의 창출과 배분
다각화, 기술능력 축적?
목차
귀속기업체 불하와 대기업의 형성
1950년대 대기업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인 : 귀속기업체 불하 및 인수
<표1>의 23대 대기업(민주당 및 군사정부 시기 부정축재기업가 + 김영모(1981)의 A 및 B급 기업가) 형성의 주요 요인
기업의 경영성과는 개별기업별로 많은 차이
면방, 소모방, 제분공업의 경우, 귀속기업체들이 귀속재산 불입금의 체납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운영이 저조해지고 적정규모의 시설이나 최신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경쟁력을 상실
이 시기에는 단순한 귀속기업체의 불하 이외에도 원조자금 취득의 유리성 여부 및 경영합리화를 통한 생산성 제고 등이 기업간의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상대적으로 중요했음
■ 중소기업의 경우
고무공업
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다시 북상함에 따라 1951년부터 부산지역에서는 “공전의 경기가 래도하여 고무신 붐”(김진엽 1985, p.25)이 나타남
고무공장들의 활발히 가동하게 된 이유는 고무공업 분야의 귀속기업체들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하되기 시작하였기 때문
동시에 전쟁기간 동안 고무공업 부문에 진출한 중소기…
메리야스공업
① 외환배정
7.2.) 등 제정
원조를 둘러싼 한 · 미
원조, 즉 대충자금(=원조액×환율)이 경제재건에 매우 중요
한국정부는 한미경제회담 시 원조 절대액의 증액을 요구, 도입되는 원조물자의 구성에 있어서 생산재를 중심으로 원조물자를 도입코자 함
당면과제가 재정안정 및 민생문제의 해결이라고 판단했던 미국은 소비재가 원조물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
결국 원조의 규모 및 원조물자의 구성(생산재 對 소비재 사이의 배분비율)을 둘러싼 양국간의 갈등은 일정한 합의점에 도달
이 과정에서 대충자금환율의 지속적 인상이 이루어짐
사용방식과 관련해서는 ‘시설사업부문 對 판매용 민수물자 = 30 對 70’의 대략적인 배분비율이 정해짐
당시 미국의 입장
한국은 동북아에 있어서 정치적?심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前方防衛國家(forward defense state)
동북아가 갖는 경제적 중요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핵심은 일본이었지 한국은 아니었음
당시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한국의 국내시장개방을 통해 한국이 일본 상품의 시장이 되는 것, 즉 ‘동북아 지역경제에서 원조자원의 재활용(recycling)을 통한 전후 재건정책’(Woo 1991, p.54)
① 외환배정
이 시기 환율은 대외적 조정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부족한 외환을 배분하는 데에는 주로 양적 규제가 사용
1950년 6월 설립된 한국은행은 한국의 모든 보유외환을 관리하고 외환업무를 취급하는 유일한 은행이었으며, 모든 민간외환收入은 한국은행에 예치토록
외환배정방식은 과대평가되어 있는 원화가치를 유지한다는 기본 원칙 아래 다양한 방식이 시도
그렇지만 과대평가된 원화가치 아래에서 외환에 대한 초과수요가 존재하였으므로, 재량적 방식에 의한 외환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렌트의 일부를 정부가 흡수
또 외환배정은 특정상품과 링크되어 있었으므로, 국내에서 생산가능한 상품의 수입대체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제한된 외환을 이들 수입대체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