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향가와 시대상
* 목차 *
1. 향가의 발생
1-1. 향찰의 발생 배경
1-2. 향찰(향가)의 표기
1-3. 향가의 기록
2. 7세기 향가
2-1. 진평왕 (서동요, 혜성가)
2-2. 문무왕 (원왕생가)
2-3. 효소왕 (모죽지랑가)
3. 8세기 향가
3-1. 성덕왕 (헌화가)
3-2. 경덕왕 (도솔가 / 안민가)
4. 9세기 이후 향가
4-1. 헌강왕 (처용가)
(* 시대적의 특징이 있는 일부 향가를 다루었습니다)
1. 향가의 발생
1-1. 향찰의 발생 배경
한자는 기원전 3-4세기에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어법이 다른 입말을 외래에서 들어온 문자에 맞추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유입부터 정착까지의 혼란기가 길었던 한자는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 중 향찰은 한자를 빌어 ‘우리말’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한자 사용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1-2. 향찰(향가)의 표기
향찰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우리말 문장을 구현하던 일종의 표음식(表音式) 자차인데, 이를 향가식 표기법이라고도 한다. 겉보기에는 한자를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신라인들은 그것을 한자가 아닌 우리말로 읽었다. 한자를 빌려 쓸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한문 문법에 익숙지 못한 신라인들이 고안해 낸 고유의 표기 방법 인 것이다.
1-3. 향가의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유리왕 5년에 ‘도솔가’가 지어진 것이 시초라고 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향가는 6세기 통일신라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신라 제26대 진평…
2. 7세기 향가
2-1. 진평왕 (서동요, 혜성가)
월주라는 우두머리 아래 부제라는 부단장 급의 인물을 둔다. 신라 제 5세는 사다함, 6세는 세종, 7세는 설원랑이라는 인물이 그 자리를 역임했다.
그런 화랑들이 풍악(금강산)에 놀고 있는데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여 낭의 무리가 의심해 떠나지 않자,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 불러 혜성을 사라지게하고 일본 군사들도 달아나니 도리어 경사가 되었다는 것이 서문의 내용이다.
여기서 혜성은 주기를 가지고 도는 별로 당시에는 전쟁을 상징해 불길해 하였다. 심대성이란 하늘을 28수(하늘을 28개로 나눔) 에서 동쪽의 7개 중 중앙을 차지하는 좌로 ‘동쪽 임금 자리의 좌’이다. 임금의 별자리에 혜성이 든 것은 전쟁의 위험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때 융천사는 노래를 지어 혜성과 일본 군사를 떠나게 한다. 융천사란 상징적 법명으로도 보이는데, 이는 하늘을 다스리는 스님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전쟁 없이 상황이 마무리됨에 왕이 기뻐하여 낭의 무리를 놀게 할 때 지어진 노래가 바로 ‘혜성가’이다.
혜성가는 문헌에 나타난 연대 기록에 따르면 가장 앞선 향가일 가능성이 높은데,〈삼국사기〉백제 본기에 의하면 594년(위덕왕 41, 신라 진평왕 16) 11월에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일본의 사서(史書)인〈니혼쇼키 日本書紀〉스이코 천황[推古天皇] 때(신라 진평왕 대)에 1만 명이 넘는 왜군이 신라에 쳐들어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추정해 본다면 혜성가는 최초의 향가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주목되는 것은 그런 혜성가가 4구체·8구체·10구체 가운데 가장 완성된 형태인 10구체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현제 사용되는 문제집이나 책에는 10구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지만 5행부터 8행까지는 신라 향가 고유의 형식인 3구6명 식 나눔이 쓰였다고 보인다.
혜성가의 가사 해석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건달파(불교의 천악신, 음악의 신 뮤즈에 비견)같은 단어를 화랑에 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