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현대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이사를 다닌다. 물론 나 또한 많은 이사를 다녔다. 80년대 다가구 주택 90년대 아파트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더욱 발전한 유비쿼터스 아파트 등 계속해서 주고는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기억 속에서의 주거는 어떻게 남아있을까? 나의 추억 속에 주거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거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삶. 또는 그런 집”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즐겨가던 곳, 내가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곳, 나의 마음까지 편하게 해주는 곳” 이런 것이 주거인 것 같다. 나의 기억 속에 주거는 어떻게 남아있는지 알아보자.
2. 본론
(1)복층 거실 나만의 아지트
나는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다. 나는 과천에 있는 한 빌라에서 태어 났다. 그리고 2살 때까지 이 빌라에서 살았다. 그리고 2살 때까지 여기서 살다가 안양의 다가구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이 때 2층집 중에서 1층에서 살았는데 정말 잠깐 살아서 많은 기억이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년 정도 살다가 내 교육환경을 생각해서 창동으로 이사갔다. 창동에서는 아파트 7층에서 살았다. 창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친구들과 매일 놀았던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매일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서 컴퓨터를 하고 숨박꼭질 보물찾기 얼음 땡 등을 했다. 6년 정도를 살아서 정말 동네에 많은 정이 들고 친구들과도 많은 정이 들어서 이사갈 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회사가 너무 멀어서 아버지 회사를 다니기 편하고 나의 교육환경을 위하여 분당으로 이사 왔다. 이 때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다.
처음 여기로 이사를 왔을 때 예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부모님께 때를 쓴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꼭…
또 어렸을 때 나는 친구들과 브레이크 댄스를 추면서 놀았었는데 매일 집에서 혼자 커다란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친구들과 다 함께 와서 춤을 추고 연습을 하면서 놀았는데 이럴 때마다 춤 잘추는 얘의 춤을 봐두었다가 친구들이 집에 간 후에는 친구들한테 지기 싫어서 매일 얘들 몰래 집에서 연습을 하다가 어머니가 그만 위에서 뛰라고 혼났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 공간은 나만의 특별 연습실이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혼났을 때 도망쳐 올라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머니께서 엄하셔서 자주 혼나고 자랐는데 그 때마다 혼나고 벌서기 싫어서 도망친 공간이 바로 여기 였다. 당시에는 어린 나이 였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두려웠고 방보다 이 공간이 더욱 편안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 공간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가끔씩은 따라와서 혼내시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내가 여기로 올라가면 내려오지 말라고 소리치실 뿐 때리시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도 나의 공간을 인정해주신 것 같다.
이렇듯 복층은 내 어렸을 적 삶에 빠져서는 안 될 장소이다. 그리고 이 장소는 나한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친근감, 자부심, 정신적 안정감, 편안함, 포근함 등 나의 신체적, 정신적 보금자리 였다. 이를 통해 저의 정체성 확립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체성이란 “본디의 참모습을 깨닫는 성질”을 뜻한다.
나는 여기서 사람들과 얘기하고 같이 뛰어 놀며 보내고 가끔은 혼자만의 생각 속에도 빠져보면서 많은 성격을 확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그 사람의 힘든 얘기를 들어주면서 이해심과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과 뛰어 놀면서 사교성과 내가 춤을 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많은 공상을 하며 상상력과 창의력 또한 키울 수 있던 것 같다. 그땐 어렸기 때문에 혼자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면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