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50년대 한국의 재생산 과정과 구조
목 차
1. 재생산 표식과 이승만기 경제의 개략적 상황
2. 재생산 표식에 도입한 구체적 한국 경제 상황
3. 결론
1. 재생산 표식과 이승만기 경제의 개략적 상황
1) 본 글에서 사용하게 될 재생산 표식
1950년대의 재생산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2 부문 재생산 표식을 따랐다. 표식을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는, (1) 재화가 생산재와 소비재 두 부문으로 나뉘고, (2) 국민이 노동자와 자본가 두 계급으로 나뉘며, (3) 노동자는 모든 소득을 소비재 소비에 사용하고, (4) 폐쇄경제이며, (5) 금융시장, 기술변화가 고려되지 않고, (6) 재화가 정확히 그 가치에 합당하는 가격에 교환된다. 표식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W:총생산 가치 C:생산수단(불변자본)가치 V:노동력(가변자본)가치 S:자본가의 잉여가치
1 부문(생산재 부문) : W1 = C1 + V1 + S1
2 부문(소비재 부문) : W2 = C2 + V2 + S2
이 때 W1=C1+C2이고, W2=V1+S1+V2+S2일 때 현재의 생산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자본가가 저축, 즉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추가된다.
Sc : 생산설비의 증축에 투자되는 잉여가치 Vc : 노동자의 신규 고용에 투자되는 잉여가치
Sk : 자본가의 개인적 소비에 쓰이는 잉여가치
S = Sc + Vc + Sk
생산으로 얻는 자본가의 잉여가치가 많아지고, 이것이 생산요소 확대를 위한 투자로 이어질 때 생산여건이 발달하고 한 경제 내의 총 생산량도 증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생산으로 창출되는 잉여가치가 저조할 때 경제는 확장될 수 없으며, 생산량이 현재의 수요에도 못 미칠 경우 경제는 퇴보하게 된다.
…
2) 당시 상황의 개략적 정리
북한쪽에 몰려있던 상태로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남한 내의 생산설비는 몹시 미흡했다. 따라서 생산재 생산량(W1)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C1, C2의 수요를 충당하기에 부족했고, 대부분의 원료(불변자본의 일부)는 미국 원조에1), 기타 불변자본 확보를 위한 자금은 정부의 재정 융?투자에 의존하고 있었다.2) 정부의 재정 융?투자 또한 그 기반이 미국 원조였으니 당시 경제는 외부 유입자금 없이는 금새 무너질 연약한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자생적인 부분만을 따졌을 때 한국의 재생산 구조는 저발전 구조였다.
이렇게 도입된 원조나 정부재원이 생산환경을 발전시켜서 기업이 생산과 거래를 통해 스스로 자본을 마련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했으면 경제구조는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불변자본 형성의 정부 기여 비율은 오히려 63년까지 약간씩 오르락내리락 했으나,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는 산업화가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면서 특정 산업?기업에 대한 투자의 쏠림 현상이 있었고, 밀려드는 원조 물자로 인해 국내 수요가 국내 생산량 촉진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원인이 크다. 국내의 자본 순환보다 원조 물자에 C1, C2가 기생하게 되자, 원조 물자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생산력이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농업 부문을 추가한 재생산 표식
그렇다면 소비재, 생산재 생산의 잉여가치 외에 재생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다른 부문인 농업 부문을 살펴보자.
원래대로라면 농업잉여가 수출되어 자금으로 교환된 뒤, 이것이 생산재, 소비재 생산설비나 노동력에 대한 투자로 이어져야 하지만, 50년대에 농업잉여는 1 부문의 자본가, 노동자들의 식량 수요를 맞추기에 급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곡, 맥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1950년에는 전체 양곡 수요 중 원조 양곡이 차지하는 비율이 1.4퍼센트였으나, 휴전이 이루어진 1953년에는 24.3퍼센트까지 증가하였다.3) 원조 양곡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내 양곡의 가격이 하락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