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미적분학의 역사
미적분학의 기본적인 개념의 기하학적 의미는
정적분(定積分) - 면적 - 구적법(求積法)
도함수(導函數) - 접선 - 접선법(接線法)
으로 이해되고 있다.
흔히 면적의 개념을 써서 정적분을 정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적분을 써서 곡선의 길이, 도형의 면적, 체적 등이 정의되는 것이다. 또 부정적분은 정적분의 특수한 경우로서, 정적분을 구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로 이해된다. 미적분학의 역사에서는 적분이 먼저 나타남에 유의해 둘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이미 구적법에서의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데, 적분의 아이디어는 구적법에서의 총합을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다.
접선이나 극치를 다루는 접선법은 17세기 초에 유럽에서 나타나 여러 가지 문제에 적용되었는데, 이것이 미분법의 기원이 된다.
뉴튼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법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다만 이들이 구적법의 문제가 미분법의 문제의 역임을 지적하여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두 분야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고 또 일반적인 계산법과 기호법을 도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하간 이들의 업적은 역사상 너무나 획기적이어서, 후에 17세기를 인류정신사의 영웅적 시대라 부르게 되었다.
2. 수학의 역사
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래 되었다. 교역 ·분배 ·과세 등 인류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계산을 수학이 담당해 왔으며, 농경생활에 필수적인 천문 관찰과 역(曆)의 제정, 토지의 측량 등은 직접적으로 수학이 관여해왔다. 수학이 학문 또는 과학으로서 주목된 것은 고대 그리스(희랍)시대, 대체로 서력 기원 6세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찍 문명의 꽃을 피운 고대의 인도 ·중국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에서는 수학을 비롯하여 괄목할 만한 문화가 발달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에서 기하학…
3. 미적분학의 발견
로서의 원뿔곡선을 논하고 있다. 이 방면은 기하학원본에는 빠져 있는 분야로서 후세의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에서 2차곡선론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을, 해석기하학의 방법을 방불케 하는 생각을 써서 집대성하였다. 그리스 수학은 이론적으로 매우 뛰어났으나, 수나 계산 방면에는 큰 진전이 없었다.
디오판토스의 대수 방면의 연구도 역시 이론적인 면이 뚜렷하였다. 그 후 10세기경까지의 유럽은 인도나 근동 여러 나라에서 발전한 산술 ·대수를 수입하는 상태였다. 인도에서는 7세기에 아리아바타(ryabhata:475∼553)가 저서 《아리아바티암:ryabhatt?am》(499)에서 기수법(記數法)과 천문학적 관측론을 상술(詳述)하고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숫자라고 불리는 것이 발명된 것도 이 때의 인도이다. 이탈리아의 피보나치가 이것을 유럽에 소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15, 16세기경에는 르네상스의 부흥기를 겪으면서도 수학의 면에서는 그리스 시대나, 17세기 이후에 보이는 뚜렷한 발전은 없었다. 다만, 이탈리아에서의 3차, 4차방적식의 해법이라든가, 프랑스에서의 대수학을 계통적으로 기호화한 점이 주목될 뿐이다. 유럽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 ·천문학 ·물리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 현대에 이어지는 이른바 ‘과학혁명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3. 미적분학의 발견
미분법은 계속적인 변화를 다루는 수학이다. 우리는 여러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본다.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그것들의 방향과 속도, 고도가 수시로 변하며 순간순간 이리저리 날아간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 나날의 온도와 기압, 그 밖의 자동차나 선박, 비행기 등도 그 때 그 때 흐름의 상태가 변하고 있다. 이 변화의 본질을 외면하고는 과학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자 16세기경부터 많은 수학자들이 개별적으로 이것의 연구에 참여하였다. 마침내 미분법과 그것의 역산인 적분법이 위대한 과학자이며 수학자인 뉴턴에 의하여 17세기 후반에 발견되었는데 그의 운동법칙의 발견에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