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기녀 문화에 관한 조사와 현대적 수용 방안에 관한 고찰
1. 머리말
기녀의 문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영역이다. 그 관심은 영화, 드라마, 소설과 같은 대중매체로 표출되기도 하고, 황진이과 같은 유명 기녀는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 국민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기녀, 기생이라는 단어는 현대 사회에 쓰이기에는 굉장히 민감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기녀는 흔히 몸을 파는 여자, 즉 창부와도 같은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대중매체를 통해 기녀를 다루는 여러 작품들은 기녀의 예인적 면모, 그리고 천민이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소신과 정절을 잃지 않으려 하는 개인적인 면모를 부각 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기녀들의 예인적, 개인적인 측면을 조명하는 작품들에 드러난 기녀들의 삶은, 여러 기녀들 중 유명 기녀의 한 단면일 뿐이며 어쩌면 여느 기녀들이 실제로 살았던 생활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일지도 모른다. 이 조사에서는 기녀들의 삶에 대해 몇몇 기녀들의 개인사, 정서적 측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의, 식, 주와 같이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생활 문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그러한 기녀 문화의 발달은 그 당시에 어떤 영향을 받았고 현대에는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그 가치를 현대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지 알아보고자 한다.
2. 본론
⑴ 기녀란 누구인가
기녀는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또는 풍류로 흥을 돋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의미하며 기생과도 같은 말이다. 기녀는 사회적으로 천민의 신분에 속하는 직업 이었기에 여러 가지 부당함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기녀가 출현 한 것은 삼국시대 즈음으로 연구되어 왔지만, 기방 문화가 가장 발달하고 기녀라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 많은 시대는 조선시대로 현재의 기녀 연구도 대부분 조선시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① 기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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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기녀의 삶
매력이 담긴 섬세한 작품들이 많다. 때문에 당대 문장가들과도 많은 교류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재주 있는 기생들을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글재주 이외에도 기녀는 지역별로 특기가 있었다고 한다. 안동의 기녀는 유교의 유풍이 강하여 『대학』을 암송하였고, 관동기녀는 『관동별곡』을 잘했는데, 특히 영흥 출신은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라 고하여 『용비어천가』를 불렀다고 전한다. 호남의 기녀들은 『판소리』를 잘하였고, 제주의 기녀들은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릴 줄 알았다 한다. 그 외 칼춤, 특별한 악기연주 등의 특기를 가진 기녀들이 있었다.
일반 기생들의 주된 일은 악사, 술시중, 심부름 성매매 등을 하였다. 파견 나온 관찰사들의 식사, 청소, 등의 집안가사를 맡아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러한 기녀들은 후에 파견 관리들의 첩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기녀들에게는 기둥서방이 존재했다. 기둥서방은 기부라 하여 기생의 남편 혹을 매니저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녀의 정확한 관리를 위해 제도적으로 제정을 했으며, 주로 별감, 관리, 군관, 무사들과 같이 어느정도 신분이 갖추어진 자가 기둥서방을 했었다.
기녀의 활동기간은 15~50세인데 어린 기녀를 동기(童妓), 나이 든 기녀를 노기(老妓), 노기보다 나이가 많아 퇴역한 기녀를 퇴기라고 불렀다. 일찍이 기방에 들게 될 경우 불과 11~12세 정도의 나이에 기녀의 길을 걷기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기도 전인 어린 소녀들은 험난한 기방에서 참기 어려운 수모들을 겪기도 한다. 강명관 교수의 <조선풍속사> 의하면 기방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하는 기생을 어떻게 길들이는 지가 상세히 나와 있다. 기방에 처음 기생이 나오면, 오입쟁이들이 기생을 기생답게 단련시키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좌중에 통할 말 있소.”
“네, 무슨 말이오.”
“처음 보는 계집 말 묻겠소.”
이렇게 운을 떼면 “같이 물읍시다.” 또는 “잘 물으시오.”라고 한다. 이 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