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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질문에 저는 여태껏 자라오면서 듣고 배우고 주워들은 얘기들만으로 혁명이란 단어의 정의는 제대로 알지 못한 체 그냥 엄청난 변화? 이정도로만 생각해 왔었고 더 해봐야 4.19혁명을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이번 2012년도 1학기 교양과목으로 서양혁명사라는 과목을 듣게 되어서 조금이나마 혁명에 관해 공부를 해나가고 있고, 혁명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고등학교 때 국사나 역사과목을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마치 저를 혁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혁명에 관해 읽고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제가 그 혁명을 직접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과거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구나 새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혁명사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다면 과연 제가 언제 내가 꿈꾸는 나, 사회 혹은 세상의 혁명에 관해 생각이나 해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만으로는 제가 꿈꾸고 있는 구체적인 혁명들을 떠올려 보지 못 할 거 같아 혁명과 관련된 영화를 한편 보았습니다. 영화를 찾아보다보니 수업시간 배운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큰 혁명을 말고도 많은 혁명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제가 막연히 생각해본 세상의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큰 혁명보다는 우리나라의 능력주의사회의 변화와 자본주의체제로써 개인주의, 빈부격차의 해소, 그리고 세계적으로 과학의 의술이 발달하면 인간존엄성이 무시되는 실험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경영학과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꿈꾸는 변화가 있다면 사회구조의 변화, 자본주의체제변화가 바로 생각납니다. 너무 막연하게 제가 원하는 세상의 혁명을 생각해 보았는데 좀 더 혁명에 관하여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강의시간에 보았던 스파르타쿠스에 대해 검색도 해보고 영화나 관력책 등을 읽어보았습니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해 마냥 TV드라마나 영화로만 보았을 때 검투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정도만 알았었는데 스파…
은 로마 역시 전쟁을 자주 치렀기 때문에 노예제도가 엄청나게 성행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노예는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에게 노예는 일종의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3명 정도의 노예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크락서스의 부를 나타낼 때 노예들의 수가 많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에서 모든 노예들은 다양한 일을 했는데 교사노예, 기술자, 검투사, 가사노동노예 등 다양하고 많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예제도의 발전은 빈부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결국 노예의 대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제1차 노예전쟁은 기원전 135년부터 132년에 일어났고, 제 2차 노예전쟁은 기원전 104년에 일어났습니다. 두 차례 모두 시칠리아에서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시칠리아는 전통적으로 로마의 곡창지대로 대규모 농장이 있었고 그 농장에서 노예를 많이 부렸고 학대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반란은 로마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그 세 번째 반란 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에 대항에 일어났던 그 세 번째 노예반란의 지도자였습니다.
스파르타쿠스반란의 내용을 보게 되면 로마 검투 노에의 중심지인 중부 카푸아의 한 검투 노에 양성소에서 주로 골인1)과 트라키아인2)으로 이뤄진 검투 노에 70여명이 탈주하게 되는데, 그들은 다른 검투노예 양성소로 무기를 싣고 가던 마차 행렬을 털고 무장한 노예들은 산속에 거점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들의 지도자 세 명 가운데에는 트라키아 목부출신으로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체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지적이고 고결한 성품을 지닌 스파르타쿠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이 탈주 검투사무리들을 처치하기위해 행정관인 클로디우스가 병력 3천명과 함께 진압군으로 파견됩니다. 클로디우스는 노예들이 진을 친 험준한 산에서 내려오는 유일한 길목에 전진 기지를 세웠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산에 자생하는 식물의 넝쿨을 이어 튼튼한 밧줄 사다리를 만들어 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