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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범죄
1.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은 2xxx년 7월 4일, 오전 11시 50분경,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해병대 해안 소초에서 해병대 2사단 김민찬 상병(당시 19세)이 K-2 소총을 탈취해 동료 해병들을 향해 사격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기도한 사건
(1) 사건 개요
이 사건으로 해병대원 4명이 사망하고 김 상병을 포함한 2명이 부상했다. 또한 7월 6일 새벽에 군 당국은 사건에 대한 범행 공모 혐의로 같은 부대 소속 정준혁 이병(당시 20세)을 긴급체포했다. 사건의 주범 김민찬 상병은 해병대 사병들 사이에서 후임병에게도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따돌림 문화의 일종인 `기수열외`를 당한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김상병은 사고 조사단과의 문답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편, 범행에 가담하였던 정 이병은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심각한 가혹행위를 당하여 분노와 불만이 내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범 김 상병과 공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 4명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 사건 진행경과
2xxx년 7월 4일 일요일 : 사고일
04:20~06:50 - 1생활관에서 취침후 기상
식당에서 조식 및 체력단련장에서 탁구
8:00~ - 총기보관함에서 소총 절취 / 상황실내 간이탄약고에서 탄통 절취(추정)
10:30 경 - 1생활관에서 이병 후임과 대화(사고자 입에서 술냄새가 났다고 함)
11:40~11:50- 전화부스 옆에서 상황병 이승렬(사망)에게 총격
-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사망)에게 총격
- 2생활관에 들어가면서 좌측 첫 번째 침상에 권승혁일병(사망)에게 총격
- 우측 첫 번…
(3) 사건원인
(4) 이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들
(5) 대책
는 바람에 김 상병 손에 넘어갔다.
-기수열외, 성추행, 후임갈취, 폭력 등을 비롯한 해병대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내무 부조리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사회 이슈화 되었다. (국방부 자체 감사에 따르면 해병대에서 2년간 943명이 구타로 치료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함)
-비상 상황발생시의 매뉴얼에 따른 대응 안됨: 총소리를 들은 해병대원들이 매뉴얼에 따른 대응은커녕, 속옷 차림으로 부대를 이탈하여 민가쪽으로 전력질주하여 도망치는 모습이 부대주변 주민들에 의해 목격됨
-군의 응급환자이송체계에 대한 비판: 총상을 당한 권모 이병에게 주변에 있던 선임들이 지혈을 하지 못해 직접 지혈을 했고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도착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 & 박모 상병은 발생 직후 생존해 있었으나 인근 병원에서 응급조치후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비판이 제기됨
(5) 대책
해병대 당국은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을 수립, 이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에 대해서는 빨간 명찰을 떼어내고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2012년 1월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상관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범 김민찬에게 사형, 정준혁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은 병영문화라고 생각된다. 사태가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구타, 가혹행위, 기수 열외와 같은 것으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문화개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군에서도 병영문화 개선과 함께 심리상담사 등 관련 제도를 강화하고 인권전문가를 초청하여 인권교육을 실시한다고 들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임시방편으로 제도를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실효성있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관심사병을 미리 축출하여 주의를 기하고 함께 보듬어가며 가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영문화 다음으로 개선되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