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 중 어업협정의 정치적함의
배타적 경제수역 협정의 유효성과 딜레마를 중점으로
Ⅰ. 서 론
본 연구는 한 · 중 어업협정의 정치적 함의를 배타적경제수역협정(EEZ)에 나타난 양국의 입장을 통해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넘어 동북아 지역의 어업 환경이 경쟁체제로 급변하는 시기 속에서 양국이 취하고 있는 정치적 활동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려고 하는 시도이다. 그리고 한 · 중 어업협정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함으로써 한 · 중 EEZ어장을 중심으로 어업협정 이전과 이후의 어업체계 변화와, EEZ 경계획정에 있어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지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한 · 중 · 일 3국이 주도적으로 이용해온 동북아 주변 해역은 자연환경에 따른 풍부한 어업자원을 바탕으로 일찍이 어업이 발전해 왔다. 그 중 일본은 높은 어업기술을 바탕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어업생산의 고도화를 이루어 동북아 수역에서 최대의 어업생산국의 입지를 각인 시켜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 한국과 중국의 어업기술이 발달하고 어업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동북아지역의 어업 환경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결과 급격하게 증가한 중국의 어업세력으로 인해 중 · 일 및 한 · 중간의 어업분쟁이 발생되어 동 수역에서 3국간에 어업활동을 조절하는 방안이 수립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94년 UN해양법이 발효됨에 따라 한 · 중 · 일 3국은 동북아지역 주변 수역에서 어업 질서 유지 및 자원관리를 위한 어업협정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97년 11월에 중 · 일, 98년 11월에 한 ·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 중 어업협정이 체결되었다.
한 · 중 양국이 서해 및 남해에서의 어업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을 1993년 12월에 시작한 이…
Ⅱ. 한 · 중 어업협정의 형성과정
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어업협정체결의 원인과 역사적 사실을 탐구할 것이다. 제Ⅲ장은 배타적 경계수역 협정 과정에서 드러난 양국의 입장을 상세히 검토 해보고자 한다. 제Ⅳ장은 협정과정에서 드러난 양국의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하여 경제적 , 정치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협정의 유효성과 딜레마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Ⅴ장은 결론이다.
Ⅱ. 한 · 중 어업협정의 형성과정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연약4)』(이하 “해양법협약”)은 1982년 채택되어 1994년 본격적으로 발효되었고 1993년부터 한국을 포함한 130개국이 가입하여 보편적인 해양법 규범으로 자리 잡아 바다헌장이라 불리고 있다.5)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새로운 어업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 이미 1965년 어업협정이 존재하였으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도 1975년 정부 간 어업협정이 이미 체결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간에는 1991년 8월 수교 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어업협정이란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다. 양국 간 어업을 정의할 법적인 틀이 없어 중국어선이 한국영해까지 접근하여 해양자원을 채취함에 따라 어족자원 고갈 및 환경오염, 해상사고 등 여러 문제가 많이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3년 12월부터 19차례 중국 측과 공식회담을 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경로의 외교적 노력이 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어업협정은 1989년 12월 민간단체 주도하에 어선 해상사고 처리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된 뒤, 본격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업협정이 전개되었다. 그 후 양국에서는 체계적으로 어업협정을 분석,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수협중앙회’ 중국에서는 ‘동황해어업협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1993년 12월 국가차원에서 정부 간 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제1차 어업협정 실무회담을 실시하였고 배타적경제수역(EEZ) 체제도입 및 수역획정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중국은 협상 초기 영해 밖의 모든 수역은 ‘공동해상수역’으로 하여, 중국어선이 계속하여 한국 영해 바로 바깥 수역